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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으로 보는 세상 104존칭하는 사회, 경애하는 사회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삼은 진흙에서 기다림이니, 도적이 오게 됨을 이루리라. 상에 말하기를 ‘진흙에서 기다린다’ 함은 재앙이 바깥에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도적을 오게 했으니 공경하고 삼가면 패망하지 않을 것이다. 〔需卦 九三〕 며칠 전에 『손에 잡히는 시경』을 탈고했다. 두 달이면 번역을 마치겠지 생각했는데,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원문의 발

편집부 2016. 8. 22.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삼은 진흙에서 기다림이니, 도적이 오게 됨을 이루리라. 상에 말하기를 ‘진흙에서 기다린다’ 함은 재앙이 바깥에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도적을 오게 했으니 공경하고 삼가면 패망하지 않을 것이다. 〔需卦 九三〕

 

며칠 전에 『손에 잡히는 시경』을 탈고했다. 두 달이면 번역을 마치겠지 생각했는데,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원문의 발음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조선시대 발행한 언해본의 발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 중 「판(板)」시 끝부분 “호천왈단(昊天曰旦)”의 ‘旦’의 발음을 ‘아침 단’이라 하지 않고 ‘조(≒朝)’라고 한 것을 발견했다. 그 아래 구절에 “급이유연(及爾游衍)”이라고 했으니, ‘단’과 ‘연’은 협운이다. 그런데도 ‘단’의 발음을 ‘조’라고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국왕이 된 뒤에 이름을 ‘단(旦)’으로 고친 것에 연유할 것이다. 즉 태조의 이름을 휘(諱)한 것이다. 현재는 휘를 할 필요가 없어서 원문 밑에 ‘단’이라고 발음을 고쳐 적었다.

사마천이 한신의 모사였던 괴철(蒯徹)의 이름을 무제(武帝)의 이름인 ‘철’을 휘해서 괴통으로 고쳐서 적은 것도 같은 예이다. 임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해서 같은 뜻의 글자로 바꾸어서 적은 것이다. 즉 ‘아침 단’ 대신에 ‘아침 조(朝)’로 바꾸고, ‘통할 철’ 대신에 ‘통할 통(通)’으로 바꾼 것이다. 왕의 이름뿐 아니라, 부모의 이름, 나아가 20세 이상 된 성인의 이름도 휘를 한다. 그래서 20세가 되었을 때 자(字)를 쓰게 한다.

자는 이름과 유관한 글자를 쓴다. 단목사(端木賜)의 자는 자공(子貢)이다. 이름의 ‘줄 사’자의 뜻을 취해서 ‘바칠 공(貢)’자를 쓴 것이다. 또 재여(宰予)의 자는 ‘자아(子我)’이다. 이름의 ‘나 여’자를 취해서 ‘나 아’자를 쓴 것이다. 또 중유(仲由)의 자는 자로(子路)이다. 이름의 ‘말미암을 유’자를 취해서 ‘길 로’자를 쓴 것이다. 이렇게 이름과 자의 뜻이 통하기 때문에, 후대 사람이 선유의 이름과 자의 발음을 고정할 때 쓰기도 한다. 증참(曾參)의 ‘參’은 ‘참’ 또는 ‘삼’으로 발음된다. 그 시대에 무엇으로 발음했는지 고민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증참의 자가 자여(子輿)이다. ‘수레 여’자를 쓴 것이다. 그래서 증참의 ‘참’도 ‘곁 마 참(驂)’으로 유추해서 ‘참’이라고 발음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자를 이름 대신 쓰기도 한다. 요원숭(姚元崇)은 측천무후 예종 현종의 3대에 걸친 재상이다. 돌궐의 질렬원숭(叱列元崇)이 모반을 하자, 측천무후가 모반한 사람과 이름이 같다고 해서 자로 이름을 대신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요원지(姚元之)로 행세했다. 물론 40세가 넘으면 자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해서, 백중계(伯仲季) 등 형제의 항렬로 대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명칭(名稱)을 휘하고, 나아가 자칭(字稱)도 휘하는 것은 예법을 까다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겠다는 뜻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공경함으로써, 서로의 인격을 높이고, 사회적 지위를 존중해주자는 것이다. 서로 공경해줌으로써, 조화로운 사회, 인정해주는 사회, 경애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나의 경솔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을 도적으로 만들었다. 공경하고 삼가한다면 패가망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