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惠而不費’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는다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자장이 공자께 묻기를 “어떻게 해야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을 높이고 네 가지 악한 것을 물리치면 이에 정치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자장이 “무엇을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되묻자, 공자께서 “군자는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으며, 수고롭

진성수 2021. 8. 13.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자장이 공자께 묻기를 “어떻게 해야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을 높이고 네 가지 악한 것을 물리치면 이에 정치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자장이 “무엇을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되묻자, 공자께서 “군자는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으며, 수고롭게 하지만 원망하지 않으며, 하고자 하면서도 탐하지 않으며, 태연하지만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스러우면서도 사납지 않다”라고 대답하셨다. 자장이 “무엇을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따라 이롭게 해주니, 이 또한 은혜롭게 하지만 허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고롭게 할 만한 일을 선택하여 수고롭게 하니 또 누가 원망하겠는가? 인을 하고자 하여 인을 얻으니 또 무엇을 탐하겠는가? 군자는 많거나 적거나 크거나 작거나에 관계없이 감히 교만하지 않으니, 태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며 보는 것을 높이 하여 엄숙히 사람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이것이 또한 위엄스러우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자장이 “무엇을 네 가지 악이라고 합니까?” 라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학정이라고 하고, 미리 경계하지 않고 성공을 요구하는 것을 포악하다고 하고, 명령을 태만히 하고 기일을 각박하게 하는 것을 해친다고 하고, 똑같이 남에게 주면서도 출납할 때에 인색하게 하는 것을 유사(有司)라고 한다.”(子張이 問於孔子曰 何如라야 斯可以從政矣니잇고 子曰 尊五美하며 屛四惡이면 斯可以從政矣리라 子張이 曰 何謂五美니잇고 子曰 君子惠而不費하며 勞而不怨하며 欲而不貪하며 泰而不驕하며 威而不猛이니라 子張이 曰 何謂惠而不費니잇고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니 斯不亦惠而不費乎아 擇可勞而勞之어니 又誰怨이리오 欲仁而得仁이어니 又焉貪이리오 君子無衆寡하며 無小大히 無敢慢하나니 斯不亦泰而不驕乎아 君子正其衣冠하며 尊其瞻視하야 儼然人望而畏之하나니 斯不亦威而不猛乎아 子張이 曰 何謂四惡이니잇고 子曰 不敎而殺을 謂之虐이오 不戒視成을 謂之暴오 慢令致期를 謂之賊이오 猶之與人也로대 出納之吝을 謂之有司니라.「堯曰」2)

 

어느 날 자장(子張)은 “어떻게 해야 정치를 잘할 수 있습니까?”라고 스승에게 물었다. 공자는 “5가지 좋은 것을 유지하고, 4가지 악한 것을 물리치면 된다”고 말했다. 자장이 “5가지 좋은 것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되묻자, 공자는 “군자는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으며, 수고롭게 하지만 원망하지 않으며, 하고자 하면서도 탐하지 않으며, 태연하지만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것이 혜이불비(惠而不費)이다.

 

자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분명 내 것을 남에게 대가 없이 주는 것인데, 허비하지 않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장은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다시 물었다. 이에 대해 공자는 “백성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니, 이것이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공자의 이 말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때, 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도와주기 때문에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을 도와줄 때를 가정해 보자. 과연 얼마만큼 도와주어야 적당한 것일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적절한 기준과 한계이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구호와 지원을 통해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자립심과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도와주는 것에만 급급하여 필요 이상을 지원하여 그 사람의 자립심을 꺾어 놓는다거나 의존심만을 자극한다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애초에 도와주려는 좋은 뜻도 헛수고가 될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되 적절한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베풀지만 허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국가의 복지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를 지원할 때, 적절한 정도를 유지하여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자립심과 자율적 의지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혜이불비’란 말은 복지정책 외에도 자녀교육과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이어령 박사는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 적합한 인재로 자녀를 기르기 위해서는 글라이더형이 아닌 자가동력형으로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라이더는 앞에서 어느 정도 이끌어 주었을 때, 한동안 공중을 날다가도 힘이 다하게 되면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그러나 자가동력을 가진 비행기는 자기 힘으로 하늘을 날다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으며, 원할 때 안전하게 착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를 교육할 때에는 부모가 좋아하는 ‘글라이더형’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자가동력형’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녀교육을 한다면, 부모는 자녀가 필요한 만큼만 지원하기 때문에 전혀 헛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때에도 필요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안다면, 필요 이상의 말로 도리어 상처를 준다거나 쓸데없는 말로 좋은 관계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자유(子遊)의 “임금을 섬길 때 자주 간언하면 수치를 당하고, 친구끼리 너무 자주 충고하면 서로 멀어지게 된다.(「이인」26)”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혜이불비는 ‘적당한 도리’라는 뜻에서 중용(中庸)과 시중지도(時中之道)를 실천하는 한 가지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