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전 예찬의 기원 - 고대 중국의 음식문화
팔진은 주나라 때 정성을 들여 만든 여덟 가지 진귀한 음식을 말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편에는 주나라 때의 팔진의 조리법이 남아 있다. 모두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 맛이 뛰어난 찬품이다. 일진(一珍) 이진(二珍)은 순모(淳母) 삼진(三珍)은 포돈(?豚) 사진(四珍)은 포양(?羊)이다. 오진(五珍)은 도진(搗珍) 육진(六珍)은 지(漬) 칠진(七珍)은 오(熬) 팔진(八珍)은 간료이다.
천자와 귀족층은 육식을 많이 하는 육식자였다. 이들의 음식 중에 ‘파’나 ‘부추’같은 채소도 있지만 대부분 양념으로 쓰였다. 주대 왕실에서는 궁궐 안에 식의라는 전문직을 설치하고 중사 두 사람이 주관하도록 했다. 음식배합의 원리는 의도에 능통한 식의가 있어 천자는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는 무릇 밥은 봄을 기준으로 하고 국은 여름을 기준으로 하고 장은 가을을 기준으로 하고 음료는 겨울을 기준으로 한다 하여 음식의 적당한 온도를 계절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상나라 때 상서 설명에는 “국을 끓이려면 오로지 소금과 매실을 쓴다” 했다. 주나라 때 역시 소금과 매실을 사용했지만, 더 많이 사용한 양념은 장(醬)인 혜(醯)와 해(醢)이다. 북송 초에 학자 도곡(903-971)은 청이록(淸異錄)에서 “장은 팔진의 주인이고, 식초는 음식의 총관이다.(醬八鎭主人 醋食總管也)”라고 했다.
주나라 때의 음식 예법과 관습은 이후 유학자들을 통해서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들이 정리한 내용은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 중의 곡례, 「예기(禮器)」, 「교특성(郊特性)」, 「소의(昭儀)」, 「옥조(玉藻)」등 장절에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 있다.
손님의 식사 예법인 객식지례(客食之禮), 손님을 접대하는 예법인 대객지례(待客之禮), 시중드는 예법인 시식지례(侍食之禮), 음식 먹을 때 예법인 진식지례(進食之禮), 먹기를 권하는 예법인 유식지례(유식지례), 술 마시는 예법인 연음지례(宴飮之禮), 상례 음식에 대한 예법인 상식지례(喪食之禮)등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나라 때 음식예법과 관습을 알 수 있다. 손님을 접대하는 예법인 경우 특히 하인이 연회에서 음식을 놓는 위치에 엄격한 규칙이 있다. 맨 마지막에 올리는 음식은 밥과 국이다. 밥은 손님의 왼쪽에, 국은 그 오른쪽에 놓는다. 주존과 주호 등 술잔을 놓을 때 마시는 부분이 손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손님은 일어난다. 또 귀한 손님이 도착하면 모두가 일어서서 공경을 표시한다. 연장자나 계급이 높은 사람이 술을 권하면 일어나 절하고 다가가서 받는다. 주인은 연회가 끝날 때 까지 먼저 식사를 마치면 안 된다. 나이 많은 분이 술잔을 비우지 않았는데 아랫사람이 먼저 다 마셔버리면 안 된다. 윗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비로소 밥그릇과 젓가락을 놓는다.
『예기(禮記)』 「문상(問喪)」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사흘간 불을 피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웃들이 된죽을 쑤어 먹인다”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의 예법은 열아홉 가지나 되었다. 술 마시는 예법은 『의례(儀禮)』중의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사례(鄕射禮)」, 「대사례(大射禮)」, 「연례(燕禮)」,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의 엄격한 규범이 있었다.
향음주례는 약 스물일곱개의 절차로 나누어진다. 젊은이들을 독려하여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도록 하는 행사였고 대사례는 활쏘기를 통하여 승리자는 임금님이 지내는 제사에 참여 할 수 있었다. 약 마흔 개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공식대부례는 임금님이 연회를 열어 타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는 의례였다. 공자를 대표로 하는 유가의 음식에 관한 사상과 관념은 고대 중국의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주된 작용을 하였다.
박종철 (석전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