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군자는 공경함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리로써 언행을 방정하게 해서, 공경과 의리가 바로 서면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곤괘 육이 문언전)
위나라 영공(위령공)의 부인은 송나라에서 시집온 공주 남자(南子)이다. 그녀는 자색이 아름다웠지만 아주 음탕해서 시집오기 전부터 친척 오빠인 송조와 간통했다. 그들의 불륜행각은 남자가 영공에게 시집와서 아들 괴외를 낳고도 계속 이어졌다. 영공도 동성연애를 하던 터라 오히려 송조를 초청해서 남자의 욕정을 만족시켜주곤 했다. 그래서 영공과 남자는 서로 불만이 없었지만, 그들의 아들 괴외는 세상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는 신하에게 모친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찔러 죽이라고 하였는데, 그만 남자가 그 낌새를 먼저 알아차리고 영공에게 하소연했다. 불륜의 소문이 커져서 온 나라 사람이 알게 된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두 부부는 세자 괴외를 국외로 추방하고, 괴외의 아들 첩(輒)을 세손으로 삼았다.
바로 그 무렵에 공자님이 다시 위나라의 초청을 받아 왔다. 그들의 무참한 연애를 공자님의 덕으로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영공이 남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외출할 때면 공자님도 수레를 타고 그 일행을 따르게 했다. 그러자 나라사람들이 임금부부의 부끄러운 관계를 공자의 덕으로 감추려한다며 수근거렸다.
공자께서 그 소문을 듣고 “임금의 덕을 좋아함이 색을 좋아함만 못하구나” 하고 탄식하시고는, 송나라로 가서 큰 나무 아래에서 환퇴의 핍박을 받아가며 제자들을 가리키며 소일하다가 영공의 초청을 받아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공자께서 위나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영공이 죽으며, 세손 첩을 임금으로 세우라고 유언하였다. 그 임금이 위출공(衛出公)이다. 출공은 명망이 훌륭한 공자님을 앞세워 위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때 그 유명한 자로와의 대화가 나온다.
자로가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사를 맡기고 싶어합니다. 무슨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이름을 먼저 바르게 하겠다.” 자로가 “이러하십니다! 선생님이 실정을 모르시는 것이! 어떻게 바로 잡으려 하십니까?” 공자께서 출공의 부친인 괴외를 모셔서 임금으로 삼으면 ‘영공→장공→출공’으로 이어지며 위나라 왕실의 이름이 바로잡히는데, 지금 출공은 부친(괴외=장공)을 임금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공자님을 모시는 것이다. 그러니 자로 생각에는 불가능한 일로 비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그 실질과 부합되지 못하면(正名) 말(임금의 정령)이 이치에 맞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맞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실질에 맞게 바르게 하면 이치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으며, 말을 이치에 맞게 할 수 있으면 뜻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 말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공자님은 부자지간의 싸움을 말릴 기회를 얻지 못하시고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사흘을 굶게 되는 액운을 맞게 된다.
그래서 역에서는 ‘공경함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리로써 언행을 방정하게 해서, 공경과 의리가 바로 서면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