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이는 명이의 때에 왼쪽 다리를 상하게 되나,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할 것이다(명이괘 육이).
방귀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귀중한 생리작용이다. 우리 애가 아직 어렸을 때 내 앞을 지나면서 방귀를 뀐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소리가 커서 “무슨 어린애 방귀 소리가 그렇게 크냐?” 하고 놀렸더니, “방귀는, 애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뀌는거야. 흥” 하고 저만치 가버렸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제딴에도 쑥쓰러웠던가 보다. 내가 뭐라고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얼른 자리를 피한 것을 보면….
맞다. 방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리작용이다. 살아있는 한 소화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화 활동에는 장이 연속해서 움직이는 연동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장 세균도 음식물을 발효시키며 소화를 돕는데, 이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한 것을 항문을 통해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한라산을 등반하기 전에 영실입구의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아줌마 일행 중에서 방귀를 뀐 사람이 있었다. 아줌마들이 한참 수다를 떨면서 식사를 하던 중에 한 아줌마가 아주 큰 소리의 방귀를 뽀옹~하고 뀐 것이다. 그 일행들도 큰 소리에 놀랐는지, “누구야?” 하며 방귀 뀐 아줌마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방귀 뀐 아줌마는 내 쪽을 손가락질 하면서 “쉬잇” 하고 입에 손을 갖다 댔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아줌마들이 또 까르르 웃어댔다. 방귀 한 방에 모두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다니, 이쯤 되면 방귀의 소화작용 역할에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역할을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방귀를 트며 즐겁게 웃을 사이가 아니라면 엄청 민망했을 것이다. 한 번은 조선의 선조 임금이 세자를 비롯한 쟁쟁한 신하들과 환담을 나누며 침을 맞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약방제조 유근이 참고 참은 방귀를 뽀옹소리와 함께 발사했다. 다들 모른 척 하고 넘어갔지만, 사관이 혹평을 한 줄 썼다. “임금의 지척에서 감히 더러운 소리를 냈으니, 그 사람됨이 경솔해서 그렇다”고. 임금이 편찮으셔서 침을 맞는 자리에 나쁜 공기를 내보냈으니, 사관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귀한 집의 딸을 수행하기 위해 고용된 ‘방귀를 뒤집어쓰는 비구니’라는 여승이 있었다. 평소에는 수행비서의 일을 하였지만, 진짜 중요한 업무는 따로 있었다. 모시고 있던 처녀가 사람들 틈에서 방귀를 뀌었을 때 “제가 뀌었습니다.”하고 재빨리 사과하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요조숙녀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방귀를 뀌는 것이 견디기 힘든 창피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광나루에서 배를 띄우며 낚시를 하다가 방귀를 뀌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익흥 씨가 곧바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민망해 할 틈도 없이, 어느새 방귀를 뀐 것이 건강을 위해 큰 일을 성공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 덕분인지 이익흥 씨는 내무부장관까지 역임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여왕의 방귀를 대신 뒤집어쓰고 그 공로로 대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방귀장관이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에는 부부끼리 ‘방귀를 튼다’ 하고, 친한 친구들끼리도 스스럼없이 방귀를 뀌곤 한다. ‘생리작용인데 어때’ 하면서도, 어려운 자리에서는 역시 민망한 소리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북돋아 주려는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한 소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밝고 현명한 판단을 못하는 때를 만나서 다리를 다쳐 걷기 어렵게 되었더라도, 내 편이 현명하고 나를 위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길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