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43무제의 허망한 꿈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사는 곤한 어린 학생이니 인색하다. 상에 말하길 ‘곤한 어린 학생이니 인색함’은 홀로 양에서 멀기 때문이다(몽괘 육사). 한나라 무제는 끊임없이 주변나라를 정벌하며 영토를 넓혔다. 장성한 태자가 “주변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면 백성이 상하고 경제가 피폐해질 것입니다”고 말하자, 무제가 웃으며 “너에게 태평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

윤상철 2022. 6. 14.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사는 곤한 어린 학생이니 인색하다. 상에 말하길 ‘곤한 어린 학생이니 인색함’은 홀로 양에서 멀기 때문이다(몽괘 육사). 

 

 

한나라 무제는 끊임없이 주변나라를 정벌하며 영토를 넓혔다. 장성한 태자가 “주변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면 백성이 상하고 경제가 피폐해질 것입니다”고 말하자, 무제가 웃으며 “너에게 태평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 내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며 전쟁을 계속 일으켰다.

 

무제가 전쟁을 좋아하고 형벌을 좋아했으므로, 조정에 전쟁을 좋아하는 장군과, 법을 혹독하고 각박하게 적용하는 관리들이 많게 되었다. 이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태자가 임금이 되면 내쳐질까봐 전전긍긍하였다. 결국 태자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이제 여섯 살밖에 안된 불릉이 태자가 되었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불릉은, 몸이 장대하고 총명한데다 무제를 닮아서 씩씩하였다. 사실은 무제가 불릉을 아낀다는 소문을 듣고 간신들이 태자를 모해한 것이다. 무제는 불릉이 마음에 쏙 들었지만 걱정이 하나 있었다. 불릉이 어린데다 불릉을 낳은 구익부인이 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곽광에게 ‘주공 부성왕도(周公負成王圖:주공이 어린 성왕을 강보에 싸서 업고 섭정을 하는 그림)’을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와 같이 불릉을 보필해서 나라를 다스리라고 명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중국을 차지했지만, 어린 아들(성왕)을 남기고 일찍 죽었다. 그러자 그 삼촌인 주공이 성왕을 업고는, 내가 아닌 성왕께서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다. 무제가 그 사실을 화공에게 그리게 해서 곽광에게 준 것이다. 이렇게 강보에 싸인 어린애도 삼촌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데, 불릉은 여섯 살이나 되었다. 그러니 곽광 네가 잘 보필한다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한 것이다.

 

곽광에게 그림을 하사한 며칠 뒤에, 구익부인의 죄를 물어서 비밀감옥에 가둔 뒤 자살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면서 그 어미를 죽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하고 수군댔다. 무제가 “그것은 물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임금이 어린데 그 어미가 젊으면 난리가 나기 마련이다. 교만해지고 음란해지며 방자해진 태후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너희들은 여후(고조의 황후)의 일을 듣지 못했는가?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어미를 제거한 것이다”고 하였다.

 

불릉은 무제의 소원대로 8살에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복 형제자매들과 궁중의 권신이 결탁해서 어린 황제를 뒤흔드는 궁중모략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결국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죽었다. 부모 없이 의지할 곳 없는 어린 황제가, 주변에 믿을 사람 없이 긴장된 생활을 하다가 일찍 죽은 것이다.

 

황제의 후견인인 대장군 곽광은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충신이었지만, 그 역시 어린 황제가 보기에는 의심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서 황제가 아직 14살의 어린 나이였을 때, 상관걸과 곽광이 서로 반역을 했다고 다투었다. 누구 말이 옳은가? 혼자 판단을 해야 했고, 그 판단에 따라 여러 사람의 삶과 죽음이 갈렸다.

 

무제는 젊은 엄마가 어린 황제를 좌지우지하며 나라를 망칠 것만 생각하고, 어린 황제를 튼튼하게 잘 양육해서 건강하고도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주는 울타리 역할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후로 제대로 된 임금이 나오지 않다가, 무제 사후 90년 만에 왕망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평생 주변 국가와 백성을 괴롭히면서 국가를 반석에 올려놓고자 한 무제의 꿈이 헛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의지할 데가 없고 길러줄 사람이 없는 곤궁한 어린애는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