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四十不惑’ 마흔 살에는 의혹되지 않는다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는 의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로 들으면 순순히 이해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따라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

편집부 2017. 2. 15.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는 의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로 들으면 순순히 이해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따라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여 不踰矩호라.「위정」4)”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 가사에는 지나간 젊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 달고 날고 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

세월의 강위로 띄워 보낸 내 슬픈 사랑의 내 작은 종이배 하나

 

이 노래 가운데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하는 가사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젊은 시절, 그 시간이 지나면 왜 다시 젊은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그 당시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뒤늦게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일까? 근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여든 살이 넘었다. 그러니까 마흔 살은 인생의 반환점을 넘어가는 나이다.

불혹을 직역하면 ‘혹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무엇에 혹하지 않는 것일까? 공자는 마흔이 되면 외부 사물에 대해 의혹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의혹이 없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사물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지혜가 쌓였기 때문에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맹자도 마흔 살에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삶은 끊임없는 유혹과 의심의 연속이다. 그 유혹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젊음을 후회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중심을 세우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불혹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불혹이 되어서도 흔들린다. 돈과 아름다움과 명예에 혹한다.

그런데 문득 ‘불혹’에 도달하는 것보다 ‘혹’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픈 사람을 보면 마음이 혹하고, 소년소녀 가장을 보면 혹하고, 쪽방에 사는 독거노인을 보면 혹하는 것도 괜찮겠다. 아름다움에 혹하는 것이 진정한 불혹이 아닐까? 유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 혹한다면 진정한 유림이 아닐까? 유림을 기만하고 자신의 명예만 탐한다면 불혹의 나이를 지났어도 외물에 제압당하는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유림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으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제 유교의 미래를 위해서 40, 50 대의 젊은 유림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유림계를 이끌어갈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