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익히고서 새로운 것을 안다면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위정」11)”
온고지신은 나이 든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사용했을 만큼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온고지신의 의미를 알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옛 것을 익힌다는 말은 과거에 배운 것을 익히는 것이요, 새로운 것을 안다는 말은 최근에 깨달은 것을 말한다. 온고지신이라는 말 때문에 유교가 과거회귀를 꿈꾸는 사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온고지신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온고지신은 옛 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 즉, 과거에 배운 것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다.
학문을 할 때에 옛날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고 매번 새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에 대응해도 충분할 것이다. 즉, 학문이 마음에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다만 과거에 자신이 배우고 익혔던 것을 잘 살려서 새로운 미래를 깨닫는 것이므로 과거와 현재가 모두 중요한 것이다. 과거가 없다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지 말자.
휴대전화의 진화를 예로 들어보자. 휴대전화가 우리나라에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휴대전화가 점차 진화해서 지금의 스마트폰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전화를 걸고 받는 역할만 했지만 오늘날의 휴대전화는 금전거래와 위치추적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 기능을 겸하고 있다. 심지어 물건 구매와 인터넷 통신까지 쉽게 한다. 이러한 휴대전화의 발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기술을 바탕으로 점차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술문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온고지신이라는 문장 뒤에는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즉, 남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온고지신해야 한다는 말이다. 온고지신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스승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두루 익히고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남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에 종사하거나 스승인 사람들은 온고지신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겨야 한다. 한 가지 일에만 능통한 스승이 아니라 넓고 깊게 깨달은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한다. 제자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직업인이 되어버린 스승이라면 깨달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남보다 한 번 더 깊이 생각하자. 그런데 이런 것을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훌륭한 스승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유림은 어른이며 스승이다. 성균관과 향교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스승이 온고지신의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스승의 자격이 없다. 입만 열면 선비라고 하면서 선비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유림은 이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공자의 정신을 빙자한 사이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