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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으로 보는 세상 118자식이 훌륭하면 부모도 훌륭해진다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아들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가 허물이 없을 것이니, 위태롭게 여기고 조심해야 마침내 길할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은 죽은 아버지의 뜻을 잘 잇는 것이다. [蠱卦 初六] 『초씨역림』의 저자 초연수는 서한(西漢)의 양(梁)나라 사람으로만 알려졌고 정확한 생졸년대를 알 수 없다. 또

편집부 2017. 3. 30.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아들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가 허물이 없을 것이니, 위태롭게 여기고 조심해야 마침내 길할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은 죽은 아버지의 뜻을 잘 잇는 것이다. [蠱卦 初六]

 


 

『초씨역림』의 저자 초연수는 서한(西漢)의 양(梁)나라 사람으로만 알려졌고 정확한 생졸년대를 알 수 없다. 또 이름은 ‘연수(延壽)’이고 자는 ‘공(贛)’이라고 알려졌지만, 송나라 황장준의 『동관여론(東觀餘論)』등에서는 이름이 ‘공’이고 자가 ‘연수’라고 하였으며, 초연수 후손의 비석인 후한(後漢)의 「소황문 초군비(小黄門譙君碑)」에는 성씨인 ‘焦(초)’가 ‘譙(초)’로 되어 있기도 해서 성씨도 정확하지가 않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구하고 사색하기를 좋아하니, 양왕(梁王)이 좋게 여겨서 그의 학문하는 비용을 대는 후견인을 자처했다. 학문적 성취를 이룬 뒤에 양왕에게 역(易)을 활용할 것을 간하자, 시험삼아 1년간 개봉시 동북쪽에 있는 소황현(또는 외황현)을 다스려 보라고 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는 역(易)의 정신을 살려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순박해졌고, 점을 쳐서 범법할 사람과 장소를 알아내서 미리 예방하였기 때문에 아예 범죄가 발생하지 못했다고 한다. 양왕이 흡족하게 여겨서 승진시키려고 했는데, 소황현의 원로들이 양왕에게 상소를 올리며 현령을 바꾸지 말기를 소원하였다. 초연수 역시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였으므로, 녹봉만 올려주고 죽을 때까지 소황현에서 현령을 지내게 했다고 한다.

 

제자로 경방(京房, BC77~37)이 유명한데, 경방의 적극적인 성품과 뛰어난 지혜를 보고, “나의 학문을 배워서 몸을 망칠 자는 경방이다”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훗날 경방이 단시일 내에 석현(石顯) 등 간신을 몰아내고 태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황제에게 간언하다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허리를 잘리는 형을 받고 기시(棄市)를 당했으니, 그의 혜안을 높이 살만하다.

 

초연수와 경방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된다. 초연수는 스승 없이 은사(隱士)의 글을 얻어 홀로 터득했으나 경방은 스승을 모셨으되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승화시켰으며, 초연수는 이름 없는 시골의 현령에 만족했으나 경방은 정치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하여 중앙무대에서 활동했으며, 초연수는 역을 소극적 예방적 차원에서 활용하며 천수를 누렸으나 경방은 적극적 정치참여를 하다가 40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

 

초연수도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크게 유명하지 못했는데, 『초씨역림』도 네 분 성인(복희·문왕·주공·공자)의 글과 상관없는 점사라고 해서 배척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나라 명제(明帝)가 기우제를 지내고 점을 치니, 『초씨역림』에 “개미가 그 굴의 문을 닫으니/ 큰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큰 비가 내려서 가뭄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하는 등등 워낙에 잘 맞는다고 소문이 나서 황실 등 상류층에서 유행하였고, 지금도 ‘점’하면 『초씨역림』과 그 저자 초연수를 떠올리며 극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자식이나 저작물이 훌륭하면, 혹 부모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좋게 해결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