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사귀되 파벌을 만들지 않으며, 소인은 파벌을 만들되 두루 사귀지 못한다.(子曰 君子는 周而不比하고 小人은 比而不周니라. 「위정」14)”
사람을 사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생은 사람의 관계로 이어지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여러 곳에서 사람 사귀는 방법에 대해 말했는데, 특히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켜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했다.
군자와 소인은 공사(公私)를 처리하는 데서 구분된다. 군자는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공(公)보다 사(私)를 앞세우는 사람이다. 따라서 군자는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사귀지만 소인은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처리하고 편을 갈라서 사귄다. ‘주이불비(周而不比)’는 군자의 행위를 보여주며 ‘비이부주(比而不周)’는 소인의 행위를 나타낸다. 여기서 ‘주(周)’는 보편적이라는 뜻이고, ‘비(比)’는 편을 가른다는 뜻이다.
성균관대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탕평비가 있다. 영조(英祖)는 정사(政事)의 시비를 논하는 상소를 금하고 노론 · 소론을 고루 등용하여 불편부당의 탕평책을 수립하고 1742년 성균관 입구에 이 비를 건립했다. 국가의 동량(棟梁)이 되는 성균관 유생(儒生)에게 편당을 짓지 말고 군자의 도를 닦게 하기 위하여 그 앞에 세운 것이다. 이 비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두루 사귀되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적인 마음이고, 편당을 지으며 두루 사귀지 못하는 것은 소인의 사적인 마음이다.)
당시 조정에는 동서남북의 붕당(朋黨)이 세분화되어 많은 수의 붕당이 존재했다. 붕당이란 뜻이나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언제부턴가 우리민족을 나타내는 부정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일제(日帝) 때문이다. 일제는 붕당이란 말보다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정착시켰다. 우리민족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도록 말이다.
편을 가르는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그런데 편을 가르더라도 공적인 마음에서 편을 가르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적인 감정이나 호오(好惡)에 따라 편을 가르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고소영 내각’ ‘문고리 삼인방’ 등이 바로 대표적인 편 가르기 문화다. 그밖에 호남향우회, 고대 동문회, 해병대 전우회는 우리 사회에서 깨뜨릴 수 없는 집단으로 유명하다. 좁은 땅에 살면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편을 가르는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편을 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심(私心)을 가지고 편을 가르는 데 있다. 세치 혀로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조화롭고 화합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소인들의 교언영색을 물리치고 군자의 공평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