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자장이 봉록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스러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한다면 후회가 적어질 것이다. 말하는 데 허물이 적고 행하는 데 후회가 적으면 봉록은 바로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子張이 學干祿한대 子曰 多聞闕疑요 愼言其餘則寡尤며 多見闕殆요 愼行其餘則寡悔니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위정」18)”
자장이 벼슬하는 사람의 자세를 묻자 공자가 ‘다문궐의(多聞闕疑)’라고 말했다. 즉,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되 그 가운데 의심스러운 것은 빼놓으라고 한 것이다. 다문(多聞)은 사람의 말을 넓게 듣는 의미도 있지만 넓게 배우는 것을 말한다. 궐(闕)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의(疑)는 아직 확신이 없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자장에게 한 충고는 견문을 넓히되 아직 정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잠시 미뤄두라는 것이었다.
요즘과 같은 정보사회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정밀하게 선택할 수 없으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어떤 것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어느 것이 거짓 정보인지 아무도 가려주지 않는다. 정보는 자신의 능력과 학문에 의해서만 선택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과제물을 보면 가관이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널린 자료를 모아서 레포트라고 제출한다. 그런데 이 과제물을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이 여러 학생의 글에서 보인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여러 학생의 레포트를 잘 조합해서 제출하기도 한다. 아마 교수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몇 줄만 읽어도 쉽게 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가 들어 있거나 이미 교수들도 인터넷 정보를 읽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모아서 마치 자신의 글처럼 속이는 행위가 어찌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이겠는가.
창밖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나무가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소나무와 비슷한 잣나무나 전나무일 뿐이다. 인간의 눈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먼 곳에 있는 사물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인간의 귀가 아무리 밝다고 해도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다. 따라서 가능하면 직접 경험하고 고찰해야 한다. 총명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밝은 귀와 밝은 눈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보다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기 때문에 사적인 마음으로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증명할 수 없고 검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자장이 공자에게 질문한 것은 바로 공직자의 자세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보다 다양한 경험과 신중한 태도로 업무의 선후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공직자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