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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統 衣服 바르게 입기(7)

<釋奠祭禮樂 樂器와 樂人服> ● 釋奠祭禮樂 槪要 우리나라에서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석전제례악의 시원은 고려 예종 9년(1114) 사신 안직숭(安稷崇)이 송나라에서 돌아올 때 신악기(新樂器)와 악보(樂譜) 및 지결도(指訣圖)를 가져왔고, 이에 대한 하례사(賀禮使)로 갔던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文公美)가 돌아올 때(1116) 송의 휘종이 준 그곳

편집부 2014. 3. 2.

<釋奠祭禮樂 樂器와 樂人服>


● 釋奠祭禮樂 槪要

우리나라에서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석전제례악의 시원은 고려 예종 9년(1114) 사신 안직숭(安稷崇)이 송나라에서 돌아올 때 신악기(新樂器)와 악보(樂譜) 및 지결도(指訣圖)를 가져왔고, 이에 대한 하례사(賀禮使)로 갔던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文公美)가 돌아올 때(1116) 송의 휘종이 준 그곳의 대성부(大晟府)에서 새로 정비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들여온 때부터이다. 이로 하여 중국의 제례악인 아악이 우리나라의 원구·사직·대묘·문선왕제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 정치적 혼란 속에 제례악을 맡은 악공들이 해이해지면서 차츰 쇠퇴일로에 있었다.
 조선이 개창되고 태조 3년에 한양으로 천도를 하고 문묘를 세웠으나 고려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세종 12년(1430) 박연(朴堧)이 원의 임우(元 林宇)의 『대성악보(大成樂譜)』와 중국의 옛 문헌을 참작하여 제례음악과 회례음악 등을 창제하였다.
  세조는 종묘의 제향에 중국의 음악인 아악을 사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으니 선왕들이 생전에 즐기시던 향악(鄕樂)인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채택하여 세조 10년(1464)  종묘제례악으로 연행하였다. 이로 하여 조선의 제례악은 아부(雅部)와 속부(俗部)둘로 나누어진다. 조선 중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멸실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복구를 시도하여 영조대에 이르러서 정비가 되었으나 성종대 보다는 악현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조선 말 일제 강점기에 원구·사직·선농·선잠 등 대부분의 제향이 폐지되었으나 종묘와 문묘의 제향은 존속되었다. 그러나 광복이후에도 많은 굴절을 겪으며 오늘날 까지 전래되고 있다.

 

● 釋奠祭禮樂 樂器

석전제례악에서 연주되는 아악기들은 각각 음양오행에 부합한 천지자연을 상징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그 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천지인의 삼재사상이 내재된 하늘과 땅과 인간의 소리를 연주함을 의미한다. 악기는 천지간에 소리가 있는 사물을 모두 모으고 쌓아 청독음(淸濁音)을 분별하여 율려(律呂)에 맞춰 악기를 만들었으니, 제작하는 재료에 따라 8종(金 · 石 · 絲 · 竹 · 匏 · 土 · 革 · 木)으로 구분하였다. 악기를 보면 쇠로 만든 편종(編鐘)과 특종(特鐘), 돌로 만든 편경(編磬)과 특경(特磬), 실로서 만든 금(琴)과 슬(瑟), 대로 만든 지(?), 적(?), 약(?), 소(簫), 바가지로 만든 생(笙), 우(?), 가죽으로 만든 절고(節鼓), 진고(晉鼓), 노고(路鼓), 노도(路?), 나무로 만든 축(?), 어(?), 흙으로 만든 훈(塤), 부(缶)가 있다. 악기의 배치는 당상(堂上)의 전영(前楹) 사이에 진설하는 등가(登歌)와 당하(堂下)의 묘정(廟庭)에서 북향하여 진설하는 헌가(軒架)가 있다. 등가는 양(陽)을 상징하고 악기로는 편종, 편경, 훈, 금, 슬, 소, 지, 약, 적, 절고, 부, 축, 어, 박, 특종, 특경이 진설되고 노래가 있어 현악기가 중심이며, 헌가는 음(陰)을 상징하며 악기로는 노고, 노도, 진고, 축, 어, 훈, 지, 적, 약, 부가 진설되어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다.

 

● 釋奠祭禮 樂人服 變遷

제례악의 악인(樂人)에는 악무를 지휘하는 전악(典樂;협률량), 박(拍)을 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집박악사(執拍樂師), 직접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악공(樂工), 노래를 담당하는 도창악사(導唱樂師), 문무(文舞)인 보태평지무와 무무(武舞)인 정대업지무를 담당하는 일무악공(佾舞樂工)이 있다.

1433년 『세종조 회례연』」에서 악공은 개책(介?)을 쓰고, 붉은 난삼(緋鸞衫)을 입고, 흰 명주에 검은 선을 두른 중단(黑緣白紬中單)과 흰 명주 바지(白紬袴)를 입고, 흰명주로 만든 띠(白紬帶)를 매고, 흰 베 버선에(白布襪)과 검은 가죽신(烏皮履)을 신는다. 도창(導唱)은 복두(?頭)를 쓰고, 붉은 공복(絳公服)을 입고, 흰명주 중단(白紬中單)에 붉은 비단과 흰 비단으로 만든 큰띠(緋白大帶)를 매고, 방심곡령(方心曲領)을 걸고, 흰 베버선(白布襪)과 검은 가죽신(烏皮履)을 신는다.

1474년『국조오례의』에서 악공은 개책, 비란삼, 백주중단, 백주고, 금동혁대 ,백포말, 오피리이며, 악사(樂師)는 복두, 강공복, 금동혁대, 비백대대,  백포말, 오피리이고, 1493년의 『악학궤범』에서는 악공은 개책, 비란삼, 흑연 백주중단, 백주고, 백초대 ,백포말, 오피리이며, 도창(導唱)는 복두, 강공복, 비백대대, 방심곡령, 백포말, 오피리이며, 1706년 『종묘의궤』에선 악공은 개책, 홍주의, 색조대 ,백포말, 오피리이며, 악사(樂師)는 복두, 청삼, 오정대, 흑피화을 신었다. 

이로써 아악공인들의 복식은 세종조 회례연과 오례의, 성종조 악학궤범 편찬시기까지는  거의 동일한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종묘의궤에 의하면 그동안 비란삼이 홍주의로 바뀌고 문헌에서는 받침옷인 중단과 바지가 제도에서 빠졌으며, 악사의 복식 또한 붉은색 공복이 푸른 청삼으로, 혁대는 금동혁대에서 오정대로, 신발은 목이 없는 흑피리(黑皮履)에서 목이 있는 흑피화(黑皮靴)로 달리하였다.

2014년 현행 악공(樂工)복식은 개책(介?)을 쓰고 아래에는 흰명주바지를 입고 홍주의(紅紬衣)에 남사대(藍絲帶)를 매고 목화(木靴)를 신고, 집박악사(執拍樂師)는 복두(?頭)을 쓰고, 아래에는 흰명주바지를 입고 흉배(胸背)가 달린 녹초삼(綠草衫)에 각대(角帶)를 띠고 목화를 신으며, 전악(典樂)은 제관(祭冠)을 쓰고, 흑연적상(黑緣赤裳)이 달린 백초중단(白?中單)에 방심곡령(方心曲領)과 폐슬(蔽膝)이 달린 흑삼(黑衫)을 입고, 후수(後綬)를 두르고, 혁대(革帶)를 띠고, 패옥(佩玉)을 혁대에 걸고 흰버선에 검은 가죽신 흑피리(黑皮履)을 신는다.

 

● 現行 樂人服食

 

           전악복식

 

            공인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