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居上不寬’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다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스럽지 못하며, 상례에 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보겠는가?(子曰 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팔일」26)” 요즘은 신분의 구별이 없지만 과거에는 동서양 모두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상하가 분명하게 구별되

편집부 2017. 6. 15.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스럽지 못하며, 상례에 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보겠는가?(子曰 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팔일」26)”

요즘은 신분의 구별이 없지만 과거에는 동서양 모두 신분제 사회였다. 그래서 상하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움직이는 사회였다. 윗사람은 명령하고 아랫사람은 복종하는 관계였다. 공자가 살았던 사회도 그런 사회였다.

공자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는 인물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사상을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개혁가였다. 그가 지닌 학식과 덕망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달보다 세상 사람 모두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도록 하고 싶었다.

백성들은 전쟁터로 내몰리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부모형제는 서로 헤어져 만날 수도 없는 시대였다. 위정자들은 백성의 고달픈 삶은 생각하지 않고 세금을 거두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자는 이런 사회를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주들을 만나 인간다운 도리를 설파하며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위정자들은 공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세상물정도 모르는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하기 일쑤였다.

공자는 세상이 혼란한 이유를 위정자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정자가 바르면 백성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따르게 되고,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 덕으로 다스리면 세상이 모두 위정자를 향해 절을 할 것이라고 했다. 위정자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로 하기 때문에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삼는다. 너그러움으로 백성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위정자의 도리이므로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위정자의 자격이 없다. 위정자가 백성을 구렁텅이로 내몰 때 혁명이 일어나고 폭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자인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할 수 있는 말을 해달라고 하자 공자는 서(恕)를 일러주었다. 서는 용서하다는 뜻도 있지만 내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위정자가 되어서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잘못한 백성을 형벌로 다스리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윗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만 백성은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신분의 상하가 존재한다. 평등하다고 외쳐보지만 영원히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윗사람은 여전히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은 여전히 아랫사람이기 때문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너그러움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의 변화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