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는 한반도의 중심이며, 충청북도의 북부에 위치한 인구 22만의 전형적인 도농복합중소도시이다.
동쪽에는 계명산이 있고, 남쪽에는 금봉산과 대림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북쪽으로는 대문산이 나지막이 앉아 있으며,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남한강과 충북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달천강이 합류하는 곳에 탄금호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곳에 중앙탑이 천년을 넘게 우뚝 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중앙탑을 소개하기 전에 충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충주는 삼한시대 때에는 마한에 속했으나, 그 후 백제 근초고왕 4년(350년)에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다가 고구려의 남침으로 장수왕 63년(475년)에 정복을 당했다.
그때 이곳에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를 건립했다. 다시 신라의 북진 정책으로 신라진흥왕 13년(552년)에 이곳을 점령하여 중원경(中原京)이라 칭하고 악성 우륵(樂聖 于勒)을 비롯하여 많은 신라 귀족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신라의 중심임을 표방하고, 지방행정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고 중앙탑(국보 제6호)을 세웠다.
중앙탑은 거대한 규모의 7층 석탑으로 이중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렸고 그 위에 상륜부를 구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와 탑신부는 여러 개의 큰 돌로 짜여 있는데 이는 탑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상하 기단에는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각층의 탑신 모서리에는 우주가 표현되어 있고 옥개받침은 각 층마다 5단이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가 남아있는데 노반은 2개 겹쳐 있다.
한 때 이 일대가 절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절터임을 입증할만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1917년에 이 탑에 대한 수리 및 복원이 이루어 질 때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나왔고, 6층 탑신에서는 청동거울, 은제사리합이 나왔다고 한다.
이탑은 신라의 석탑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큰 예로 최근의 실측조사에 의하면 높이가 12.86미터에 달한다.
중앙탑 부근에는 유적지가 많이 산재되어 있는데, 신라 때 귀족의 무덤인 누암리 고분군(국가지정사적 463호)가 있고,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군과 싸우다 장렬해 전사한 탄금대(국가지정명승지 제42호)와 충주고구려비가 있어서 옛날의 화려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근대에 와서 충주댐과 조정지댐건설로 인하여 중앙탑 주변에 수질 좋은 탄금호가 생겨 지난해에는 80여개 국가 2,3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이곳에서 치러졌고, 주변에는 충주박물관, 술박물관,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명승지이다.
또한 이곳 지명이 충주시 가금면이었는데, 금년 4월1일부터 중앙탑면 으로 개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