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四字論語> ‘見賢思齊’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가지런하게 될 것을 생각한다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가지런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내면에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子曰 見賢思齊焉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니라. 「이인」17)”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갈 때 반드시 거기에는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에서 선(善)한 사람을 선택해서 좋은 점을 본받고, 불선(不善)한

편집부 2017. 8. 1.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가지런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내면에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子曰 見賢思齊焉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니라. 「이인」17)”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갈 때 반드시 거기에는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에서 선(善)한 사람을 선택해서 좋은 점을 본받고, 불선(不善)한 사람에게서는 나쁜 점을 보고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견현사제’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요즘의 멘토와 같은 의미다. 그런데 멘토는 반드시 어진 사람이 아니지만, 어진 사람은 멘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는 데 있다. 학문을 하면 인품이 넓어지고 덕이 충만해져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으며, 옛것을 배우고 익혀 새것을 아는 사람도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성이 훌륭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어렸을 때는 본받을 사람이 많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학교의 선생님이나 역사적으로 훌륭한 위인을 존경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그 범위와 존경의 대상이 달라진다. 연예인과 같이 화려한 삶을 살며 돈을 잘 버는 사람이나 또는 현실적인 삶에서 모델을 찾는다. 어릴 적에 꿈꿨던 것들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거나 현실화 되고 있다는 증거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인간에게는 선악이 모두 있다. 선을 찾아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악함이 있을 때는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다. 악을 제거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강단에 서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다. 말은 그럴듯하게 잘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알면 고쳐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면서 반성만 한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자성(自省)하는 모습은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름답게 세상을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 삶의 궤적(軌跡)을 남길 때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생각의 끝에, 나와 함께 살면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줄 사람이 반드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