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왕이 나아가서 정벌하면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니, 우두머리는 끊고, 그 졸개를 풀어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왕이 나아가서 정벌함’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라를 바로 하는 것이다. 〔離卦 上上〕
조선시대 후반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성수패설』에는 80여 편의 당시 양반사회를 비판하는 풍자가 재미있게 실려 있다. 그 중에 「자신이 만든 재앙(自作之孼)」 편은, 지도자는 공정무사해야 하며 잘못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 내용이다. 하지만 잘못을 꼭 들쳐 내는 것 보다 반성할 기회를 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더 옳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내용을 요약해 본다.
서울에 살던 유생이 북한산 어느 사찰에서 과거시험 공부를 하였는데, 그 절 안에 20살 정도 되는 스님이 문자도 잘 알고 영리하기도 하였다. 유생과 대화도 하고 일도 같이 처리하면서 정이 돈독해졌다. 얼마 뒤에 유생이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뒤로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관계를 지속하다가, 어느 날 그 스님이 아무런 연통 없이 다른 곳으로 감으로써 소식을 모르게 되었다.
훗날 그 유생이 경상도 감사를 제수 받아 관내를 순행하다가 그 스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곧바로 불러서 친하게 잘 대접하며 “너는 속세로 환속하여 내 곁에 있거라. 내가 좋은 자리에 혼인도 주선하고, 네 앞길도 열어서 평생 걱정이 없게 하겠다”고 하였다. 스님이 계속 굳게 사양하니, 감사가 그 손을 잡고 간곡히 묻기를 “네가 이렇게 굳게 사양함은,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니, 나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보라.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소승에게 이렇게 정을 주시고 친히 하시니, 어찌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 소승이 중이 되기 전에 무덤을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는 젊은 과부를 강제로 겁간하였는데, 그 과부가 수치를 못 이겨 자결하였습니다. 그 때의 죄책감이 너무 커서 북한산으로 도망가서 삭발하고 색욕의 생각을 끊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환속하라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감사가 그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스님을 체포한 뒤에 “너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고, 나는 백성을 살피는 처지에 있으니, 내가 너와 친하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그 머리를 효수하여 과부의 원혼을 달래게 하였다.
당시의 법과 가치관으로는 살인에는 죽음으로 속죄시키는 것이 옳았을지 모른다. 이른바 사회정의의 실현이고, 원한을 풀어주는 방법이다. 그러나 감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거부하고, 과거의 죄를 속죄하며 과부의 영혼이 잘 되기를 빌며 살고자 한 사람이다.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사람을 꼭 끌어내어 단죄를 해야 했을까? 과거에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해서 사람을 겁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색욕과 절제 못하는 혈기이다. 그것만 단속하고, 선량한 국민의 한 사람이자 수도인으로서 속죄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그래서 역에서는 ‘왕이 직접 나서서 왕도로 정벌하면 승리도 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할 것이다. 그 우두머리만 죽이고, 나머지를 풀어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