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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統 衣服 바르게 입기 (3)

儒巾과 道袍 입기 儒巾 유건은 유생이 평상시나 향교, 서원 혹은 科試場에 나갈 때에 쓰거나 제사에 참례할 때 쓴다. 수용 초기에는 다른 巾類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유건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나, 그 후 점차 변하여 英·正祖代에는 중국의 유건과는 전혀 다른 형상의 것으로 國俗化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검은 베를 가지고 자루 모양으로 만들어 양옆을 깊숙이 접어 넣

편집부 2013. 12. 15.

儒巾과 道袍 입기

 

儒巾

유건은 유생이 평상시나 향교, 서원 혹은 科試場에 나갈 때에 쓰거나 제사에 참례할 때 쓴다. 수용 초기에는 다른 巾類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유건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나, 그 후 점차 변하여 英·正祖代에는 중국의 유건과는 전혀 다른 형상의 것으로 國俗化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검은 베를 가지고 자루 모양으로 만들어 양옆을 깊숙이 접어 넣은 후, 위쪽의 솔기 부분을 뒤로 5cm정도 눕히면서 양귀를 자연스럽게 잡아 뺀 형태로서, 선비 ‘士'자를 방불케 한다.

 

道袍

『南塘草稿』에 “선비의 출입 상복으로 위관자가 입는 직령공복을 착용할 수 없으므로 직령제도를 조금 바꾸어 만든 것이 도포이다.”라고 그 기원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도포의 깃, 섶, 고름은 요즈음 두루마기와 같은 형태인데 소매 품이 넓고 또한 길이가 길다. 그리고 옷 뒷자락은 두 겹으로 되어있는데 뒤 중심이 터져있고, 그 위에 展衫이 한 겹 더 붙어 있어서 터진 곳을 가려준다. 이것이 道袍의 특색이며 앉을 때 展衫을 들고 앉아 뒷자락이 구겨지는 것을 방지 하였다. 허리에는 細條帶를 매었다. 吉服은 靑色으로 하고 平常服은 白色으로 하며 賤한 자는 입지 못하였다. 絲帶도 1품에서 3품까지는 紅色, 4품 이하는 靑色이였다.  高宗祖 甲申衣制改革(1884) 이후 넓은 소매를 廢한 후에도 士大夫의 통상예복으로 家祭에서나 儒林의 公服으로 현재까지 입고 있다.

道袍의 부분 명칭

 

그림1

 

行纏

勒帛 俗稱 行纏이니 用錦布爲之하되 長三尺許廣三寸許 一頭에 有二繫하야 束脛之膝히 纏繞袴管이라. 『增補四禮便覽』

 

 

 

  
 ㉠ 바짓가랑이를 가지런히 하여  무릎 아래에서 행전을 묶는다.
 ㉡ 행전의 솔기는 종아리 뒤가 되고, 접혀진 부분은 버선의 수눅선과 일직선이 되게 한다.
 ㉡ 행전 머리에 두 끈을 무릎 아래를 둘러 종아리 안쪽에서 외코로 묶는다.

 

絲帶

凡束帶, 高不至胸, 下不至臍, 勿緊迫, 勿緩散, 結必同必, 齊其端也. 『士小節』

 

 

 

 

 

 

 

   
    
사대를 가슴에 둘러 두 길이를 가지런히 하여 사대가 묶여질 옷고름 위에서 늘어질 길이를 정한다.
㉠ 술이 달린 끈을 자신의 앞으로 하여 왼손 검지에 걸어 몸 쪽의 두 끈을 앞으로 당겨, 左右로 교차한다.
㉡ 좌우 교차되어 있는 위치가 움직이지 않게 엄지로 눌러주며 左에서 右로 옮겨진 끈을 왼손 검지에 고리 지어진 속으로 넣어 좌로 뺀다.
㉢ 右에서 左로 옮겨진 끈을 左에서 右로 뺀다.
㉣ 左右에 만들어진 두 고리를 왼손에 잡고 술이 달린 두 끈을 당기면 묶여진다.
㉤ 左右의 두 고리를 당겨 자신의 몸에 맞추어서 술이 달린 두 끈을 조여 준다. 동심결로 묶어진 두 고리는 가지런히 내려둔다.

金淑子 (成均館 典禮委員, 釋奠敎育院 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