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泮村魯堂>미국(美國)과 미국(米國), 그리고 USA(United States of America)

김학경(문양서당 훈장) 아직도 박근혜 정부가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억울한 누명을 쓴 ‘대통령 박근혜’를 구하기 위해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정치적 억울함이라는 주장이나 신념을 폄훼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집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국(美國) 국기(國旗)를 보면 불편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아

편집부 2017. 11. 4.

 

김학경(문양서당 훈장)

 


 

 

아직도 박근혜 정부가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억울한 누명을 쓴 ‘대통령 박근혜’를 구하기 위해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정치적 억울함이라는 주장이나 신념을 폄훼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집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국(美國) 국기(國旗)를 보면 불편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방(友邦) 미국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들의 ‘억울한 대통령 박근혜’를 구하고 싶은 간절함의 표현이리라. 하지만 주권(主權)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보다 패권(覇權) 국가 미국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면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국은 과연 미국(美國)인가, 미국(米國)인가. 일제 강점기 시절 동아일보의 “米國 大統領 윌손君에게 與함(1920년 4월 1일자)”이라는 기사처럼 대부분의 신문에서 미국은 ‘쌀의 나라’, 미국(米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어차피 ‘아메리카(America)’라는 영어에서 ‘메’라는 음을 음차(音借)한 한자 표현의 문제이다. 공교롭게 일본은 아직도 미국(米國)이라고 쓰지만 우리나라는 1946년 이후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이라는 단어로 굳어져 버렸다. 특히 우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도움으로 북한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의미에서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 때 ‘세계의 경찰’, ‘민주주의의 파수꾼’을 자처했던 미국의 모습은 사라지고 배타적이고 자국(自國)의 실리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國粹主義)’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 결코 ‘아름다운 나라’로 보이지 않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미국은 한 때 다양한 인종이 이주(移住)하여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 다민족(多民族) 국가 USA(United States of America ; 美合衆國)였음을 상기(想起)하자.

 

11월 7일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국빈(國賓)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을 방문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과 관련하여 일부 언론은 우리나라에서 1박을 하는데 일본에서 2박을 한다는 이유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 이슈에서 한국을 소외시키고 주변국끼리만 논의한다는 현상)’, 외교 무능을 거론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보도를 일삼는 일부 언론들이야말로 얼마나 국익(國益)을 위해 정론(正論)으로서 봉사하였는지 묻고 싶다. 혹시라도 일부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이 국가의 안보(安保), 국익(國益)을 이야기하며 자기 정당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고 있지 않은지 면밀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나 일부 보수 언론이 간과(看過)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언론(言論)이 올바른 비판 기능만 발휘했더라도 이렇게 참담한 국정 농단의 사태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국빈 방문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박이냐 2박이냐는 논쟁보다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전쟁 위험 해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무역 갈등 등을 국익(國益)의 관점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는 것이다. 사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미국 국기를 들고 시위를 하고, 트럼프의 ‘하룻밤 국빈 방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영원한 우방(友邦)’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 영원한 우방이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고 북진(北進) 통일을 가로막았던 ‘중공(中共)’은 지금 ‘중국(中國)’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되어 있지 않은가. 국제 사회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협력 국가로,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 국가의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 사회에서 미국(美國)도, 미국(米國)도 아닌 화합과 협력의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USA(United States of America)’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자께서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하셨다. 그릇처럼 고정되어서 자신의 쓰임새가 특정한 용도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즉, 군자는 특정 상황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펴서 원만하게 판단해야 한다.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판단을 갖추는 사람이 군자이다. 우리 유림(儒林)들도 미국에 대해 ‘미국(美國)’에서 ‘미국(米國)’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