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49마음에 없다고 보고듣지 않는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그 집을 크게 짓고는 그 집을 포장으로 가려놓았다. 그 문안을 엿보니 고요하고 사람이 없어서, 삼년이 되어도 보지 못하니 흉하다. [豐卦 上六] 해치는 반하를 먹고 물가나 호수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서 그 열매를 먹으며 산다고 한다. 반하는 맛이 맵고 독성이 있어서 가래가 끼거나, 기침, 구토 따위

편집부 2014. 6. 12.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그 집을 크게 짓고는 그 집을 포장으로 가려놓았다. 그 문안을 엿보니 고요하고 사람이 없어서, 삼년이 되어도 보지 못하니 흉하다. [豐卦 上六]

 

해치는 반하를 먹고 물가나 호수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숲에서 그 열매를 먹으며 산다고 한다. 반하는 맛이 맵고 독성이 있어서 가래가 끼거나, 기침, 구토 따위를 치료하는 식물이고, 소나무나 잣나무는 모두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지조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해치는 이렇게 맵고 독하고 지조 있는 것을 먹으면서 자신의 성격도 맵고 독하게 만들어 올바름을 실천하는 동물이다.

해치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선악을 잘 구별하는 신령스러움에 있다. 요임금 때 한 쌍의 해치가 조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다가, 착한 사람이 오면 앞장서서 인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려하면 머리로 들이 받았다. 해치가 죽자 전각의 왼쪽에 묻었는데, 그곳에 붉은색 풀이 1장이나 자랐다. 소인배가 전각으로 들어가려하면 마치 손가락으로 가리키듯이 가지를 뻗어서 알려주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도 해치의 영험함을 믿었나 보다. 신라시대에는 해치부란 관직이 있었고,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사법관의 의복에 해치를 붙인다”고 했으며, 특히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은 해치 문양을 새긴 관복을 입었다. 또 대신들이 조정에 들 때 해치상의 꼬리를 쓰다듬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여기저기에 해치상(獬豸象)을 많이 세워놓았다. 아마 해치의 옳고 바름을 좋아하는 품성을 본받고자함일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마루에 한 쌍을 설치한 것은 정사를 돌보는 대통령의 공평무사를 비는 뜻이고, 세종시 종합청사나 대검찰청, 그리고 국회 정문에 한 쌍씩 설치한 것도 다 공평무사한 정치를 해달라는 기원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나 국회를 공정무사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뒷문으로 드나들어서 잘 못 보니, 뒷문에도 해치상을 세워달라”고 하는 의원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해치를 보고 안보고의 문제이겠는가?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고 들려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조선시대처럼 해치그림을 관복에도 넣고, 근정전 앞에 해치상을 세워놓고 오며 가며 본받으라고 해도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외교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있는 평화의 궁에 해치상을 기증해서 설치하기로 했단다. 일본이 독도문제와 위안부문제의 유리한 해결을 위해 평화의 궁 2층에 일본룸을 설치한 것에 자극을 받은 것이라고도 한다. 1층 입구에 해치상을 설치해서 공평무사함을 기원하고 일본도 반성하라는 이야기이겠지만, 과연 출입하는 사람들이 해치의 정신을 본받을지는 의문이다.

본받고 본받지 않고는 각자에게 달렸겠지만, 易에서는 “‘그 집을 크게 지음’은 자신의 오만함이 하늘 끝까지 오름이고, ‘그 문안을 엿보니 고요하고 사람이 없음’은 스스로 감추고 피하는 것이다”라고 해서, 욕심만 부리고 반성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열지 않으면 흉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