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이는 겸손해서 평상 아래 있음이니, 사와 무를 씀이 많게 하면(정성껏 열심히 빌면서 설득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상에 말하기를 ‘많게 해서 길함’은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巽卦 九二〕
신라 경덕왕 때 희명이라는 여인이 지은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또는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라는 향가가 있다. ‘천수관음님께 기도하는 노래’ 또는 ‘천수관음보살님의 대비하신 마음에 기도하는 노래’라는 뜻으로, 『삼국유사』의 「분황사 천수관음의 대자비로 맹아가 눈을 얻다」에 전하는 글이다.
한기리라는 마을에 희명이라는 여인이 살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가난했지만 행복한 나날을 지내던 중,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 갑자기 눈이 멀었다. 없는 살림에 빚을 내어 온갖 약을 다 써보았지만, 한번 실명한 아이의 눈은 낫지를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눈이라도 뽑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관세음보살이었다. 천 개의 눈을 갖고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이 세상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구제하여 주신다는 관세음보살이 생각난 것이다. “내가 왜 진작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관세음보살님께 부탁해서 천 개의 눈 중에 두 개만, 아니 한 개라도 우리 아이에게 달라고 해 보아야지. 그래서 아이가 다시 볼 수만 있게 된다면, 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어머니는 참으로 용감하다.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에게 눈을 달라고 할 생각을 한 것이다. 천 개나 되는 눈이 있으니, 사랑하는 내 아들을 위해 그 눈을 뽑아 달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곧바로 아들의 손을 이끌고 관세음보살의 그림이 그려진 분황사로 달려갔다. 아들에게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신은 그 옆에 서서 빌고 또 빌었다.
“무릎을 꿇으며 / 두 손바닥을 모아서/ 천수관음님 앞에 / 간절히 비옵나이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 가지셨사오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어 / 둘 다 없는 내 몸에/ 하나만이라도 / 가만히 고쳐주십시오./ 아아! / 나에게 주시오면/ 그 큰 자비는 너무 커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쳐주시던가, 눈을 뽑아 주시던가!’ 아이는 노래 부르고 어머니는 빌고, 사실 막다른 골목에 밀린 아무런 방도도 없는 장터 아낙과 철없는 아이의 간절한 희망이다. 이 막무가내의 기도를 관세음보살이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밝음을 구한다, 다시 광명을 구한다, 아들의 눈이 떠지기를 바란다’라는 뜻의 ‘희명(希明)’으로 고쳤는지 모른다. 아니, 너무나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희명댁’이라고 불렀는지 모른다.
이를 기록한 일연스님도 찬사를 보탰다. “대나무 말 타던 더벅머리가 시장거리에서 놀더니/ 하루아침에 두 눈 먼 소경되었네/ 천수관음님이 자비로운 눈으로 돌아보지 않으셨다면/ 얼마나 많은 봄을 버들꽃 못보고 헛되이 지냈을까?”
그래서 역에서는 ‘지나치게 겸손하게 보이더라도, 정성껏 열심히 빌면서 설득하면 내 마음이 통하게 되어서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