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를 우리 노팽에게 가만히 비교하노라.”(子曰 述而不作하며 信而好古를 竊比於我老彭하노라. 「술이」1)
선거철만 되면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소위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다. 학자들은 책을 저술해도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 누에고치가 아름다운 비단을 토해내는 것처럼 원숙한 학문적 업적을 대중에게 내놓으면서도 거창한 출판기념회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필 작가를 기용해 대필시키고 거짓말이나 늘어놓는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기념회를 한다.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하는 짓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공자는 창작은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옛 성인들의 말을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술이부작은 창작과 서술에 대한 원칙이다. ‘술(述)’은 과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고, ‘작(作)’은 새롭게 창작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 학식이 탁월한 지식인들조차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만주 땅을 지배하고 있을 텐데 ……”라고 말한다. 이런 가정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반대의 상황은 왜 생각하지 않을까? 잠시 중원대륙을 점령하고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국에게 통째로 먹혀버릴 수도 있는 일인데. 그래서 역사는 가정이 필요 없다.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해야 하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은 창작이 가능하지만 역사는 창작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역사를 가지고 소설을 쓰는 일이다. 우리 역사를 자기 맘대로 자신의 역사로 간주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일을 누가 용납할 수 있는가. 역사에 대한 진실과 사실을 기록하는 습관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하더라도 실록을 조작하거나 거짓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의 찬란한 기록의 역사요 자랑스런 산물이다.
공자는 역사가로서 철저한 포폄의식(襃貶意識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에 입각한 기술과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판단력은 공자의 탁월한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스스로 창작보다 서술하는 방식을 중시했을 것이다. 과거에는 숨기고 위작하면 쉽게 알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각종 매체가 발달해서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고, 거짓말을 하려해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열린사회의 장점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순식간에 모든 사실이 전파된다. 게다가 똑똑한 전화기를 통해 모든 일을 쉽게 확인할 수는 세상이다 보니 꼼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속없는 정치인들은 여전히 출판기념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