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일무 춤사위는 일제 강점 시기에 대부분 망실됐다. 일무를 담당하던 예악인들이 모두 흩어지게 됨에 따라 일무의 올바른 전승이 어려워지게 됐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성균관 석전에서 일무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단과대학별로 돌아가며 담당했고 약식 무보에 따라 일무를 췄다. 1980년 석전 일무의 춤사위를 재현해 2006년 춘기석전까지 성균관 석전에서 추었지만 이 역시 자료의 검증과 한계로 원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한계와 오류에 대해서는 지난 '석전대제 일무 검증위원회'에 참여한 위원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안이다. 1980년 재현한 일무와 2006년 개선된 일무는 무보의 술어 해석과 춤사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의 비교표에 수록된 술어 해석과 춤사위를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1. 문무(文舞) 춤사위 비교(1980년 일무는 반궁예악전서 술어 해석이 잘못됐다)
2. 무무(武舞) 춤사위 비교 (1980년 일무는 근거 무보 없는 창작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