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 혁명 당시 임창순 성균관대 교수가 플래카드에 문구를 쓰고 있다(출처 : 나무위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부산직할시 문현동에서 촬영된 '아! 나의 조국' 사진이다(출처: 네이버 블로그).
<유교신보> 제221호(1987년 7월1일자) 1면에 중앙유교인 44명의 시국성명 발표 소식이 보도됐다.
강정희 전 석전대제 기능보유자도 시국성명서에 서명했던 한 사람이었다.
<유교신보>는 제221호(1987년 7월1일자) 2면 '사설'을 통해 당시 국민과 유림의 바램을 표현했다.
유교에 대한 오랜 편견 중의 하나는 ‘과거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국가나 권력자 등 힘 있는 쪽의 입장을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기본적으로는 그런 정서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수많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기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운 조선시대 사화(士禍, 조신(朝臣)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던 일로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가 있었음)만 하더라도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년(연산군4))를 비롯해 대부분이 국왕과 집권층의 잘못을 뜻있는 젊은 조정 신하와 선비들이 비판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조선왕조가 문을 닫는 그날까지도 일정 부분 계속 존재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왕조의 마지막 권력층은 대부분 일본 천황이 수여하는 작위와 하사금을 받으면서 호의호식(好衣好食)했지만 인의예지와 충효의 정신을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수많은 지사(志士)와 애국인사들이 일신(一身)의 영달(榮達) 대신 조국 광복과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한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지난 3-4월에 <유교신문> 인터넷판과 지면을 통해 원문과 한글 번역문 등을 공개했던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서명인 137인 역시 지역에서 상당한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공개하면서까지 독립 주권을 추구했다.
1945년 해방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 및 자유당 세력과 갈등 관계였던 심산 김창숙 선생이 유도회총본부, 성균관, 재단법인 성균관, 성균관대학교를 조직하거나 설립하자 이를 빼앗고 궁극적으로는 500만 유림을 장기독재체제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해 개입했던 권력에 맞서 1960년 4·19 혁명의 확산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 직위에서 물러남)를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도 「학생(學生)의 피에 보답(報答)하라」는 문구를 직접 작성해 시위단의 맨 앞에 섰던 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등 한학과 동양철학, 유교 공부를 바탕으로 유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지식인 그룹이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생각이 시대를 관통하던 1960, 70년대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유교문화와 전통문화 유산을 우대하는 정책들을 펼치며 매년 봄과 가을에 서울 문묘 성균관에서 봉행되는 춘기석전과 추기석전에 금일봉(金一封)을 하사하고 정부와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고위 관계자들을 참석하게 하였고, 성균관과 전국 유림들도 대부분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979년 10·26사태로 갑자기 국가지도자가 부재하고 최규하, 전두환 등으로 지도자가 교체되는 와중에 성균관과 유림들은 국가의 안정과 번영, 인의예지의 추구를 통한 도덕성 회복, 가족공동체의 유지 등을 염원하며 우리 스스로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며 계도(啓導) 및 교육의 기능을 강화해갔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잘 되어야 국민도 잘 되고, 국민이 잘 되어야 후손들에게도 보다 발전된 사회를 물려줄 수 있기에 웬만한 일은 모두 참고 협조하며 도왔으나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억압과 왜곡으로 점철된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거부한 채 1987년 4·13 호헌(護憲) 조치를 통해 ‘현행 간접선거방식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에게 정권을 이행하겠다’고 밝히자 이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전국민적인 항쟁이 전개된다.
당시 한국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미국 정부는 여·야 간의 합의를 통해 개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미국 국회 상원외교위원회도 4.13 조치 재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행정부와 의회 양쪽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은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오히려 1979년 12·12 군사반란이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처럼 게엄령 선포와 군대를 동원한 진압을 추진했고, 6월24일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 한국 민주화 지지 결의안이 의결되었으나 여전히 시국은 일촉즉발(一觸卽發, 조금만 건드려도 촉발할 것같은 몹시 위급한 상태)의 분위기였다.
이러한 때에 과거보다는 영향력이 감소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전국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중앙유교인(中央儒敎人)’ 44명이 그해 6월26일 완곡한 표현을 담았지만 정부의 깊은 반성과 도덕성 회복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서를 발표했고, 관련 기사가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교신보> 제221호(1987년 7월1일 수요일자) 1면에 게재되었다.
1933년생으로 만 54세였던 최근덕 성균관 부관장 겸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를 필두(筆頭)로 하여 성균관, 유도회총본부, 청년유도회중앙회 등 중앙의 조직에 몸담고 있던 비교적 젊은 유림들이 주축이 된 서명인 명단을 보면 지난 7월19일 서거한 고(故) 최근덕 원임 성균관장과 지난 2018년 서거한 고(故) 서정기 원임 성균관장 및 고(故) 강정희 석전대제 기능보유자 등 29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상만 (사)석전대제보존회 상임이사, 오석원·최일범 전 성균관대 교수, 여문필 전 (사)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등 15명이 생존해 있다.
신문에는 발표 당시의 시국선언문 원문이 실려있지 않았으나 이상만 (사)석전대제보존회 상임이사가 보관하던 책 『새시대를 여는 길』(고 서정기 원임 성균관장 지음, 한국학술정보(주), 2006) 106-109쪽의 원문을 입수해 아래에 게재하며 이상만 상임이사, 김희덕 청풍김씨 대종손,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류희목 (사)영남선비문화수련원 사무총장 등이 제공한 정보를 종합해 44명 서명인의 한글 이름, 한자, 당시 직책, 이후 주요 직책을 정리해 소개한다.
아울러 '편집인 겸 주간(主幹)'이었던 임동철(林東綴)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가 작성해 같은 날 2면에 게재된 사설 ‘위대(偉大)한 민족사(民族史)의 새벽’을 통해 6월 항쟁과 6·29 선언 등의 당시 분위기를 좀 더 알 수 있게 전한다.
중앙유교인(中央儒敎人) 44명 시국성명(時局聲明)
- 정부의 도덕정치(道德政治) 구현 등 3개항 촉구
성균관과 유도회총본부 유지(有志, 뜻이 있음) 회원 44명은 지난 (1987년 6월) 26일 「현 시국에 대한 유교인의 성명」이라는 제하(題下)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그동안 우리 유교인은 정치를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은인자중해 왔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현 시국은 공론(公論)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구현하지 못하고 민중(民衆)을 실의에 빠뜨려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은 ‘정(正, 바름)에 바탕을 둔 도덕 정치의 구현을 위해 그동안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정부는 깊이 반성(하고), 도덕성 회복에 전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대사 완수 등 3개 항을 정부측에 촉구했다.
최근덕(崔根德)·이완희(李完熙)·이재천(李在天)·김택진(金澤振)·김상립(金相立)·한명희(韓明熙)·이중기(李重基)·최성태(崔性台)·이재룡(李在龍)·홍성재(洪性宰)·서재근(徐在根)·성표환(成表煥)·정원태(鄭元泰)·김명준(金明俊)·노평규(魯平奎)·여문필(呂文弼)·손권배(孫權培)·정태오(鄭泰吾)·송성호(宋星鎬)·최응균(崔應均)·서정표(徐廷杓)·유정기(柳正基)·양대연(梁大淵)·장희윤(張熙允)·김치영(金侈永)·성원규(成元圭)·강정희(姜正熙)·정병련(鄭炳連)·양재열(梁在悅)·최병철(崔秉喆)·이종림(李種林)·서정기(徐正淇)·최일범(崔一凡)·이해영(李海英)·김희덕(金喜德)·김도연(金度淵)·황선영(黃善榮)·이상만(李相萬)·김재열(金在烈)·오석원(吳錫源)·박홍식(朴洪植)·강경원(姜敬遠)·장석홍(張錫洪)·최종수(崔鍾秀)<이상 44명>
현 시국에 대한 유교인의 성명
4·13 조치 이후 정국이 어지러움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1천만 유교인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은인자중 자제하여 왔다.
그러나 전 국민의 열망을 안고 성사된 6·24 영수회담의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결실이 전혀 없고, 야측에서는 결렬을 선언하는 등 오히려 국민에게 실망과 허탈감만 안겨 주고 있을 뿐이다. 이에 우리 유교인은 그동안 자제를 깨고 여야정치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는 바이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요, 정치는 공론이 바탕이다. 국민의 정부, 민의의 정치만이 오직 민심을 수습하여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일부 군 출신 정치인이 국가 운명을 책임지고 전천함과 동시에 재벌과 유착한 정상모리배들이 민의를 외면하고 오로지 권력을 끼고 돌아 야망을 채우는 데 급급하여 마침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위가 떨어져서 민중이 실의에 차 있다.
우리나라는 단군의 개국 이래로 학문을 숭상하여 5천 년의 찬란한 문화국을 건설하였으니 고대에는 신선의 고장이라고 하고, 또한 군자국이라고 하였으며, 근대에는 동방제일의 예의지국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 이 땅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이 만대에 길이 살아가는 나라요, 땅이다.
광복 40년 동안 아름다운 민주정치의 전통을 수립하여 후손에게 정치의 모범을 물려주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모두 정치지도자들이 목전의 공명과 권세에 눈이 어두워 정치인이 표리여일하고 시종일관하는 태도를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한갓 애국애족을 가장한 사이비 정객들이 외세에 의존하여 국리를 독점하고 민심을 오도하면서 민족혼을 꺾어 버리고, 전통의 미풍양속을 짓밟아 버린 결과 이제 동포애나 인정미는 찾을 길 없고, 살벌한 소리와 참담한 넋두리만 이 땅에 가득하다.
현 정치인은 대오 각성하라!
우리 유교인은 현 시국의 중대한 전기를 맞이하여 국가의 장래를 크게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견해로써 시국수습의 대도를 밝혀 둔다.
1. 윤리와 도덕은 국가를 유지하는 근본이요, 예의와 염치는 정치인의 기본자세이다. 정권 쟁취의 열망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한다면 윤리와 도덕이 저절로 파괴될 것이요, 사리사욕에 열중할 때 예의염치는 안중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정치인의 본분을 지켜라.
2. 정치는 정(正)이다.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바른 정치는 곧 덕치를 뜻하며, 우리의 전통적 유교정치이념이다.
덕치란 무엇인가. 도덕을 바탕으로 한 정치이다.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도덕이 결여되면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듯이 정권도 도덕을 지니지 않으면 붕괴되고 만다. 최악의 정권은 도덕이 없는 정권이고, 가장 허약한 정권 또한 비도덕적인 정권이다.
현 정권은 연행학생, 고문치사, 범인 축소조작, 이른바 성고문사건 등 일련의 비도덕적인 사건의 와중에 있다. 깊이 자성하여야할 것이다.
3. 여야지도자는 용기 있게 협상장소에 나아가서 대인의 도량을 발휘하여 허심탄회하게 지난 감정을 모두 잊고 영단과 화합으로 슬기롭게 난국을 수습하여 세계 만방에 자치역량을 보여서 국위를 선양하라.
4. 우리 겨레는 문화를 숭상하고 평화를 수호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직분을 다하고 질서를 지킨다. 국민 각자 냉정히 이성을 잃지 말고 책임을 완수하여 민주화된 정부 아래서 88올림픽을 성대하게 개최하고, 국력을 한데 모아 2000년대 국운약동의 계기로 삼자.
5. 재야의 민중과 학생은 의사표시를 정정당당하게 제시하고, 정부는 인권을 존중하여 비인도적 고문이나 폭력을 엄금하고 최루탄 등을 함부로 쓰지 말라.
6. 우리 유교는 이 나라, 이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하면서 학문의 기초요, 풍속의 원천이 되어 왔다. 실천도덕이자 생활윤리이며 민족종교, 국가사상의 맥이 되어 국란의 고비마다 감연히 일어나 민족정기를 일깨우고 사회정의를 되살렸다. 지금까지 우리는 은인자중하여 끝까지 정국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깊이 우려를 금치 못하였는 바 이제 여야영수회담으로 국가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아 시국 수습의 전기가 보이므로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되겠기에 우리 1천만 유림의 성충을 모아 그 소견의 일단을 피력하고 활기찬 새로운 민족의 역사가 하루 속히 전개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단기 4320(서기 1987)년 6월 26일 성균관, 유도회총본부 유지회원(有志會員) 일동(一同)
서명 44인 명단
(당시 성균관장은 박중훈, 유도회총본부 회장은 김경수, 청년유도회중앙회장은 이승무 : 이하 내용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아는 분들은 mail@cfnews.kr로 제보 부탁 드림)
1. 최근덕(崔根德) : 당시 성균관 부관장·성균관대 교수, 이후 성균관장·유도회총본부 회장·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 역임
2. 이완희(李完熙) : 당시 유도회총본부 사무총장,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성균관장 직무대행 역임
3. 이재천(李在天) : 당시 성균관 부관장·유도회총본부 중앙상임위원
4. 김택진(金澤振) : 당시 성균관유도회 경북도본부 회장, 이후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 역임
5. 김상립(金相立) : 당시 유도회총본부 재무부장, 이후 유림회관 건립준비위원장 역임
6. 한명희(韓明熙) : 당시 석전대제이수자, 이후 유도회총본부 총무차장·성균관 의례부장 역임
7. 이중기(李重基) : 당시 유도회총본부 총무부장, 이후 성균관 총무처장 역임
8. 최성태(崔性台) : 당시 성균관 총무부장
9. 이재룡(李在龍) : 당시 유도회총본부 조직부장
10. 홍성재(洪性宰)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상임위원, 이후 성균관 원로 역임
11. 서재근(徐在根)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상임위원
12. 성표환(成表煥)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상임위원, 이후 성균관 원로 역임
13. 정원태(鄭元泰) : 당시 한학자, 이후 성균관 원로·고전연구소장 역임
14. 김명준(金明俊)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상임위원
15. 최병철(崔秉喆)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청주대 교수 역임
16. 정병련(鄭炳連)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전남대 교수 역임
17. 손춘배(孫椿培) : 당시 성균관대학교 성대출판사 출판부장
18. 정태오(鄭泰吾)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위원
19. 송성호(宋星鎬)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위원, 이후 모현동지회 임원 역임
20. 최응균(崔應均)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위원
21. 서정표(徐廷杓)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위원, 이후 모현동지회 사무국장 역임
22. 유정기(柳正基) : 당시 충남대 교수, 이후 한자교육운동가 역임
23. 양대연(梁大淵) : 당시 성균관대 교수
24. 장희윤(張熙允) : 당시 유도회총본부 중앙위원
25. 김치영(金侈永) : 이후 성균관 총무부장 역임
26. 강정희(姜正熙) : 이후 성균관 전례위원장·초대 석전대제 기능보유자 역임
27. 서정기(徐正淇) : 당시 동양문화연구소장, 이후 성균관장 역임
28. 양재열(梁在悅)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사정위원장, 이후 안동대 교수 역임
29. 성원규(成元圭)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관악지부장, 이후 민중유교연합 사무총장 역임
(이상은 고인)
30. 이종림(李種林)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부회장, 이후 대한검도회장 역임
31. 최종수(崔鍾秀)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안양지부 부회장, 이후 경기도향교재단이사장 역임, 현재 성균관장
32. 오석원(吳錫源) : 당시 안동대 교수, 이후 성균관대 교수 역임
33. 장석홍(張錫洪) : 당시 ㈜보성화림 부장, 이후 도서출판 장서원 대표 역임
34. 김희덕(金喜德)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부회장, 이후 현재까지 청풍김씨 대종손
35. 김도연(金度淵)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건축사
36. 이상만(李相萬)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사무총장, 이후 성균관 총무처장 역임, 현재 (사)석전대제보존회 상임이사
37. 김재열(金在烈)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교수 역임
38. 황선영(黃善榮)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민중유교연합 부회장 역임
39. 노평규(魯平奎)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사업부장, 이후 전주대 강사 역임
40. 여문필(呂文弼)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이후 (사)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역임
41. 최일범(崔一凡) : 당시 성균관대 강사, 이후 성균관대 교수 역임
42. 이해영(李海英) : 당시 성균관대 강사, 이후 성균관대 교수 역임
43. 박홍식(朴洪植) : 당시 성균관대 강사, 이후 대구한의대 교수 역임
44. 강경원(姜敬遠) : 당시 청년유도회중앙회 총무차장, 이후 유교학회 간사 역임
(이상은 생존)
<사설> 위대(偉大)한 민족사(民族史)의 새벽
- 여야(與野)의 대타협(大妥協)을 기대(期待)하며
꼭 이루어야 한다. 기어이 성취하여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어둡고 괴로운 최근세의 민족사를 깨끗하게 청산하여야 한다.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엄습해 오더라도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분연히 일어서서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냥 민주화가 아니라 세계시민이 깜짝 놀랄 수 있는 선진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선진적인 특급열차를 타고서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후진적인 완행열차를 타고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 도처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한 성실성 때문에 중진국의 선두주자가 되어서 경제적인 선진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
경제뿐만이 아니다. 교육도 벌써 외형으로 보아서는 선진국에 떨어지지 않는 수준을 육박하고 있다. 특히 교육투자에 대한 열정은 우리 민족이 세계 으뜸이리라.
문화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문화전통의 반석 위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리만큼 성숙되어 있다.
너무 낙후되어 있다. 훌륭한 문화와 빼어난 교육과 성장된 경제 등의 영역은 이미 상당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데, 낙후된 정치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다. 부끄러운 노릇이다.
우리 국민이 세계 시민사회에 문화와 교육과 경제 등의 측면에서는 광명정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임할 수 있지만 정치의 측면에서는 우리 국민이 자학적인 열등감 속에 빠지게 된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가. 일차적인 책임은 위정자가 져야 한다. 우리 국가, 우리 정부가 위정자의 몇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가, 우리 정부는 국민 모두의 것이며, 위정자는 국민의 뜻을 쫓아서 성실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주체인 위정자가 바른 마음을 가지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행위의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위정자는 자기 수양을 쌓은 사람으로 덕망이 높은 지성인이어야 하고, 지성을 바탕으로 한 신의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도덕적 신의를 저버릴 때 정치가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신의를 무시하고 정치를 하였을 때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고, 그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겸허한 태도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영단이 있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그리고 민중의 뜻은 하늘의 뜻인 것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고 하였다. 하늘에 죄를 짓기 전에, 그리고 민중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 전에 뒤틀린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뒤틀린 것을 뒤틀리지 않았다고 하여 아집을 피우거나 벌써 민심이 떠나 있는데 떠나있지 않다고 오판한다면 우리 국민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요원하게 되고,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만약 파국에 이른다면 그 책임은 집권여당에 있으며 동시에 야당에도 있는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분명히 4·13 조치는 국민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6·10 대회에서 후보자를 선정한 것은 어불성설의 처사였다. 그러한 연유로 민심이 기운 것이다.
집권여당은 민심을 책임지고 수습하여야 한다.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먼저 선행하여야 할 것은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민심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수습처방이 엉뚱하게 다른 것이 제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적 차원에서 민심을 수습하여 민주주의의 선진화된 사회 건설을 위하여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여 본다.
첫째, 4·13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사실상 철회」가 아니라 국민이 분명하게 납득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담화를 통하여 명확하게 철회하여야 한다고 본다. 여야의 영수회담을 통하여 철회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이 그 점을 잘못 이해한다면 집권여당에 대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어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그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한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겠기 때문이다.
둘째, 6·10 대회에서 결정한 후보자는 사퇴하여야 한다. 개헌논의가 재개된다면 헌법을 새롭게 개정하여야 하며, 새롭게 개정된 헌법이 만들어지면 그 헌법에 쫓아서 대통령의 선거가 이루어질 것이다. 「선 개헌, 후 대통령 후보」가 순리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집권여당이 개헌에 대한 의지를 확보하게 나타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공당으로서 집권여당이니까 순리에 쫓아서 개헌을 하고, 그 다음에 얼마든지 후보로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선 민심을 수습하여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하는 자세로서 국민들은 높이 평가할 것이리라.
셋째,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 지금 현재의 민심은 민주화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의지가 굳건하다. 이러한 내용을 수렴하겠다는 자세로서 정치에 임한다면 집권여당은 현재의 정치적인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일들이 「질 것을 각오하면 이길 수 있고, 이길 것만을 생각하면 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게 하면 민심이 여당 쪽으로 기울 수도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끝으로 우리 민족은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면서 역사를 책임지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최근세의 근백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나 많은 수난과 컴컴한 방중 속에서 살아왔다. 더욱 컴컴한 방중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위협은 북쪽의 괴뢰집단이다. 여야의 세기적인 대타협과 통치권자의 탁월한 영단으로 선진민주대한의 위대한 민족사의 새벽을 맞게 되기를 바란다.
부디 선진민주대한의 새벽의 광장에 세계시민을 초청하여 펼칠 훌륭한 잔치가 「88올림픽」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