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동정

인터뷰 – 고성향교 김문수 전교“수기치인과 극기복례를 솔선하자”

김문수 고성향교 전교 ▶안녕하십니까. 김문수 전교님. 지난 4월 성균관 문묘 고유를 통해 전교 업무를 시작하셨습니다. 전교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8년 3월15일 고성향교 전교로 취임했고, 4월 성균관 문묘 고유를 하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14세 때 명심보감을 배우면서 옛 선현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으나 청장년 시절에는 공직에 종사하면서 그 길

이도생 기자 2018. 12. 3.

김문수 고성향교 전교

 

▶안녕하십니까. 김문수 전교님. 지난 4월 성균관 문묘 고유를 통해 전교 업무를 시작하셨습니다. 전교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8년 3월15일 고성향교 전교로 취임했고, 4월 성균관 문묘 고유를 하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14세 때 명심보감을 배우면서 옛 선현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으나 청장년 시절에는 공직에 종사하면서 그 길에서 멀어졌다가 퇴임 후에 문묘가 있는 향교에 출입하면서 경서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경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면서 공부자의 가르침이야말로 나날이 혼탁해가는 세태를 보다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고성향교 전교로서 열심히 일해 볼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향교의 연혁과 구성원 등 향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고성향교는 1398년(태조 7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중등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7년 현령 정여린과 도감 이현 등의 노력으로 중건되었고 1869년(고종 6년)에 ‘호적분규사건’이 일어나 고성현을 통제영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1870년(고종 7년) 고성현의 치소를 통제영 성내로 옮겼다가 이후 1874년(고종 11년)에 다시 고성으로 복귀하였으며, 향교도 다음 해에 고성으로 옮겨왔습니다.

현존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동무, 서무, 풍화루(3칸 2층 팔작지붕), 수복청, 전사청, 내삼문, 동문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송조 2현,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향교의 건물 가운데 명륜당은 ⼌자 형태의 건물로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성향교는 전교를 위시하여 유도회와 장의, 여성유도회 등 220여 명의 유림들이 14개 읍면 별로 활동하며 사문진작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역대 전교(도유사) 임명 기록은 훼철·누락되어 정확치 않습니다. 전해진 기록이 1765년(영조 41년) 이후인데 그마저 기록의 순서가 제대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교는 최경함(1765)을 비롯해 정창석 원임 전교(2015)까지 103명입니다. 유도회장은 이진흥 원임 회장(1951) 이후 김석관 원임 회장(2016)까지 16명이며 현재는 허용도 회장이 맡고 있습니다.

▶고성향교의 발전을 위한 운영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운영계획이라고까지 말씀 드릴 것은 아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향교의 교육기능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향교의 숙원사업인 충효교육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충효교육관 기공이 연내에 시행될 예정입니다.

대지 300평에 연건평 120평의 2층 건물로 그리 크지 않지만 충효교육관이 준공되면 고성의 유림들은 물론 어린이,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성현의 말씀을 교육하고, 자기 발전을 위한 예절, 서예, 성독 등으로 밝은 고성이 만들어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균관과 유교를 위해 평소 가진 생각이나,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편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생각하기에 공자께서는 현실을 중시하는 과학적 통찰을 통해 모든 세상 사람들을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간절히 타일렀고, 내세를 긍정하고 현세를 부정하는 신묘한 초인적 인격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보통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수기치인과 극기복례 같은 조목을 제시하고 목표를 명확히 한 것은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우수하고 설득력 있는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충심(衷心)으로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현실은 이와 같이 우수한 가르침을 외면하고 외래 문물을 지나치게 수용한 나머지 사람들이 날로 이기적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 무질서와 포악무도한 패륜범죄가 횡행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치유하고 순화할 수 있는 방도는 유교문화의 부흥만이 유일한 대안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유교문화는 점점 쇠퇴하고 지금까지 실천하여 온 조상 제사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오상이 무너진 지 오래이니 유교의 2대 주축인 제향과 교화 기능도 일부에 국한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유림이 실천해야 할 급선무는 저의 보잘 것 없는 소견으로는 유교가 피안의 종교인지 차안의 학문인지를 명료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성균관을 비롯한 모든 향교 유림은 유교의 실천조목인 수기치인과 극기복례를 솔선하고 유교 상층부의 지도자는 정치권력이나 금력을 초월하는 학문을 갖춘 자를 선임하는 일이 급합니다. 모든 유교의식에서 육체적 노고와 진행의 난이도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국가 도덕 복원을 위한 유교문화 중흥에 인적, 물적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교 중흥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되어 저 나름대로 실천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