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대유학당 대표)
하늘과 땅이 사귀지 않는 것이 비괘니, 군자가 본받아서 덕을 검소하게 하고 어려운 것을 피해서, 녹(벼슬)으로써 영화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否卦 大象傳]
사람의 몸에는 8만 4천 개의 털구멍이 있다고 한다. 털구멍은 잘 안보이지만, 구규(九竅)나 십규(十竅)는 눈에 띄는 큰 구멍이며, 이들 모두는 나와 우주를 소통시켜서 생명을 유지케 하는 구멍들이다. 구규는 구멍이 두 개씩 있는 눈·코·귀의 여섯과, 한 개의 구멍으로 되어있는 입과 성기 그리고 항문의 셋을 더해서 모두 아홉 구멍을 말한다. 사람이 제대로 살려면, 잘 보고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먹고 잘 배설되도록 구멍관리를 잘해야 한다.
또 열 번째 구멍은 여성에게만 있는 자궁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뜻한다. 이른바 통합하는 구멍으로, 평소에는 아홉 개의 구멍으로 우주와 소통하며 살다가 생생의 덕을 베풀 때는 열 번째 구멍인 10구멍을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홉 개의 구멍 중에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은 늘 쓰는 구멍으로 밖으로 드러내야 잘 쓸 수 있고,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은 평소엔 잘 안 쓰기 때문에 감추고 있어야 필요할 때 잘 쓸 수 있다. 마치 빛의 세계에서 적·주·황·녹·청·남·자의 일곱 색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고, 그 양 끝에 있는 적외선과 자외선은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소통도 잘 해야 되지만 드러낼 것과 감춰야 할 것도 잘 가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괘는 9규가 반대로 되었다고 해서 “비괘는 사람의 도가 아니다”라고 한다. 제일 위의 효가 양효이므로 눈이 한 개인 것이고, 그 밑의 오효도 양효이므로 귓구멍이 하나인 셈이며, 사효도 양효이므로 콧구멍이 하나이다. 보아도 초점이 맞지 않고, 들어도 어설프게 들으며, 숨을 쉬어도 모자라게 되니, 인간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또 삼효는 음효이므로 입은 둘이고, 이효도 음효이므로 성기가 둘이며, 초효도 음효이므로 항문이 둘인 셈이다. 사람 몸의 구멍은 외부와의 소통을 의미하고 소통이 되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두 개가 있어야 될 구멍은 모자라서 소통을 반밖에 할 수 없고, 한 개씩 있어야 될 구멍은 둘씩 있어서 두 배로 소통하자고 하니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말하자면 버는 것은 반으로 줄어들고 소비는 두 배로 늘린 셈이다. 이대로 나가면 망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구멍을 잘 관리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이미 잘못 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구멍들이 본래의 기능을 찾을 때까지 조심하고 절약하며 양보하고 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역에서도 “윗사람은 베푸는 덕을 적게 줄이고, 아랫사람은 너무 영화롭게 살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