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균관·종단

성균관, 공기 2576년 추기석전 봉행

초헌관 김교흥 국회 문체위원장 포함 참례객 약 200여 명 참석<br>지난 춘기석전에 이어 이번에도 비천당 내부 촬영은 극소수에게만 허용<br>제관 명단을 미리 공개하는 향교들과 달리 당일에야 팜플렛을 통해 공개하는 관습 지속

오흥녕
2025.09.25·9분 읽기·조회 104

 

선조들에 이어 지난 2012년부터 13년째 봉사하고 있는 이욱(李旭) 수복이 명륜당 앞에 대기하고 있다.

 


 

 

성균관대 유생문화기획단 청랑 학생들이 참례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석전 봉행 전에 제관 및 성균관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찬자 이욱 수복의 인도로 제관들이 비천당으로 향하고 있다.

 


 

 

예정시간 오전 10시를 넘겼으나 행례가 시작되지 않아 참례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헌관위에 헌관들이 서립해 있다.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이 비천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준의 소임을 맡은 이들이 비천당으로 오르고 있다.

 


 

 

악단 중 위에 자리하는 등가(登歌) 연주자들이 문묘제례악을 연주하고 있다.

 


 

 

악단 중 아래에 자리하는 헌가(軒架) 연주자들이 문묘제례악을 연주하고 있다.

 


 

 

 

팔일무단이 문무(文舞)를 추고 있다.

 

 


 

 

팔일무단이 문무의 동작을 이어가고 있다.

 


 

 

팔일무단이 무무(武舞)를 추고 있다.

 


 

 

팔일무단이 무무의 동작을 이어가고 있다.

 


 

 

공기 2576년 추기석전이 봉행되고 있다.

 


 

 

약 180-200여 명의 참례객이 함께하고 있다.

 


 

 

 

참례객들이 석전 봉행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수복 가문에 시집와서 70년 가까이 성균관을 지키는 김인겸 여사가 '유교 종단과 성균관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시하듯' 손을 모은 채 봉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참례객들이 팔일무단의 문무, 무무 동작을 지켜보고 있다.

 


 

 

상당수 향교가 미리 제관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비해 성균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비밀을 고수한다.

 


 

 

 

1954년 9월23일 거행된 추계석전에 '독실한 기독교인'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 직전인 1979년 추기석전에도 금일봉을 보내는 등 관심을 빠뜨리지 않았다.

 


 

 

본지의 전신인 <유림월보> 제6호(1969년 9월25일자) 4면의 내용으로, 맨 윗 사진에 성균관대 ROTC 단원들이 도열해 행사장의 엄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59년 성균관 추기석전 모습으로, 한 눈에 보기에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파가 가득하다.

 


 

 

예전의 '서울 문묘 성균관 석전'은 대한민국 대표 의례행사로 대단히 크게 주목받았다.

 


 

 

제19대 박중훈(朴重勳) 성균관장 재임기인 1986년 9월12일의 추기석전 장면이다.

 


 

 

제24대 최근덕(崔根德) 성균관장 재임기인 1998년 10월17일의 추기석전 장면으로 성균관대 정문에 대형 축하아치가 설치되고, 유복을 입은 유림들이 참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해 있다.

 


 

 

 

성균관(관장 최종수)은 9월25일 오전 10시 10분 비천당에서 공기 2576년 추기석전을 봉행했다.

 

관내 임직원과 성균관대학교 유생문화기획단 청랑(靑浪) 학생들이 참례객들의 입장을 돕고 180여 명의 참례객,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예술감독 김성진)의 문묘제례악단,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총괄 임학선 성균관대 명예교수)이 비천당 앞마당에 자리한 가운데 예정된 오전 10시보다 10여 분 늦게 시작된 석전은 명륜당에 있던 제관들이 찬자 이욱 수복의 안내로 비천당으로 들어서며 시작되어 당상집례 서정택 전례위원장이 월대 위에서 홀기(笏記)를 읽으며 절차를 집행하고, 당하집례 김옥란 석전대제이수자가 참례자들에게 각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행례(行禮)를 시작으로 전폐례(奠幣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겸 분헌례(分獻禮), 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철변두(徹籩豆), 망예례(望瘞禮), 예필(禮畢)의 순서로 진행된 이번 추기석전의 제관은 다음과 같다.

 

▶초헌관 김교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아헌관 최병주 성균관모성회장 ▶종헌관 정광섭 진위향교 전교

 

▶분헌관 ▷동종향위 김영익 광산김씨문중 ▷서종향위 차혜경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부회장 ▶전사관 김경선 석전대제이수자 ▶집례(당상) 서정택 전례위원장 ▶집례(당하) 김옥란 석전대제이수자 ▶대축 위창복 석전대제이수자 ▶묘사 원재식·이상명·정영진 석전대제이수자 ▶알자 권선출 석전대제이수자 ▶찬인(분헌관) 최광경 석전대제이수자 ▶찬인(대축) 안도섭 전례위원 ▶사세 김돈현·박혜자 석전전례사 ▶정위 및 배위 ▷봉향 양재환 석전대제이수자 ▷봉로 정연대 석전대제이수자 ▷봉작 정연대 석전대제이수자 ▷전작 김형열 석전대제이수자 ▷사준(정위) 황미숙 석전대제이수자 ▷사준(배위) 한순복 전례위원 ▶동종향위 ▷봉작 강성범 전례위원·김영기 석전전례사 ▷전작 이의석 전례위원 ▷사준 최순임 전례위원 ▶서종향위 ▷봉작 이석우 석전전례사·이재철 전례위원 ▷전작 김남원 석전전례사 ▷사준 최진 전례위원 ▶진설 민효순 석전대제이수자 ▶복식 김숙자 석전대제이수자 ▶감찰 박광영 의례부장 ▶찬자 이욱 수복

 

지난 춘기석전에서의 본지에 대한 촬영 방해(‘성균관, 공기 2576년 춘기석전 봉행-본지, 창간 56년만에 처음으로 총무처 방해로 봉행 장면 대부분 촬영 못해’, /coding/news.aspx/6/8/95277)에 이어 이번 추기석전에서도 성균관 총무처는 비천당 양쪽을 철저하게 지키며 극소수 인원만 내부 촬영을 허용해 ‘창간 56년의 역사를 가진, 유교권 유일의 전국신문) 본지는 이번에도 비천당 안에서 석전이 봉행되는 모습을 촬영하지 못했으며, 참례객들도 대형 모니터 화면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장면들을 보며 대략의 진행 과정을 파악해야 했다.

 

또한 ‘언양향교, 공기 2576년 추계석전 초정회의 개최(8.25, /coding/news.aspx/1/1/100386)’ ‘울진향교, 공기 2576년(서기 2025) 추기석전 파임회의 개최(8.26, /coding/news.aspx/1/1/100448) ‘기장향교, 을사년 추기석전 초선 개최(8.28, /coding/news.aspx/1/1/100593)’ ‘평해향교, 손병복 울진군수에게 추기석전 초헌관 망지 전달(9.17, /coding/news.aspx/1/1/101154)’ 등의 본지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의 상당수 향교는 빠르면 한달 전부터 미리 초헌관을 비롯한 제관 명단을 공개하고, 천망(薦望)된 제관들이 각자의 소임을 바르게 인지하고 언행을 삼가는 등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고 있으나 성균관은 여전히 봉행 당일에서야 팜플렛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초헌관인 김교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인천 서구갑)의 천망 사실도 석전 준비에 가장 큰 수고를 하는 성균관 수복(守僕) 등의 관계자들도 전혀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진행되며 유교 종단 내부에서는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 9월22일에서야 외부 언론인 <아시아투데이>의 기사(유교 성균관 25일 ‘공자 등 35인 성현 추모’ 추기석전 봉행-석전, 국가유산 85호로 지정... 김교흥 의원 초헌관 맡아)를 통해 알려졌다.

 

공부자(孔夫子)를 비롯한 성현들을 높이 받드는 최고의 유교 의례인 ‘서울 문묘(文廟) 성균관(成均館) 석전대제(釋奠大祭)’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으나 오랫동안 성균관을 출입한 어른들의 증언에 의하면 1945년 광복 이후 성균관이 복원되고, 성균관대학교가 설립되며 장안의 화제였던 석전 봉행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 부부도 참석하고, 주한외국인 사절 등 한국에 머무르는 최고위급 외국 관계자들의 당연한 참석 행사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석전까지 빠짐없이 금일봉(金一封)을 보냈을 정도로 신경 썼다고 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균관대 ROTC 학생들이 도열해 행사장의 엄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고, 주요 국내언론의 메인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주목받았으며, 유림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 관계자, 정치인, 이웃종단 수장, 내·외국인의 관람 열풍이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십수 년 사이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이제는 성균관에서 석전이 봉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몇 만원 씩을 내며 한복 대여를 하고 경복궁과 창덕궁·창경궁까지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이 성균관까지는 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본지가 전국 유림과 국민들의 제보를 받고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증거를 바탕으로 한 취재를 통해 본격적으로 성균관의 위법·편법·불법 행위들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한 이후 ‘이런 내용들이 허위이므로 기사를 삭제해달라’며 최종수 성균관장과 김기세 총무처장이 먼저 본지와 본지의 대표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2심까지 그들의 패소로 귀결되는 등 사법부의 판단이 이뤄지자 그 과정에서 내막을 파악한 상당수 유림과 국민들이 지금의 성균관 운영에 실망하여 참석은 물론 헌성금 납부도 거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며 공기 2576년인 올해의 춘기석전과 추기석전은 역대 최저의 참례자 숫자와 최저의 헌성금 모금액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울 문묘 성균관의 춘기·추기석전은 내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되어야 하기에 지금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급증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 다시 한번 한국전통문화의 본류이자 정신세계의 원천인 유교가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는 특단의 대책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추기석전은 우리들에게 숙제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