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단상] 서울 문묘 성균관을 묵묵히 지켜온 두 할머니
68년을 보낸 김인겸 여사(90)와 25년째인 성의순 원임 부관장(87)의 동행(同行)
.jpg)
일제강점기인 1936년 9월22일에 봉행된 '경학원' 추기석전에서 남성들만 팔일무를 추고 있다.
(수정).jpg)
1958년 춘기석전 봉행 후 일무를 추었던 성균관대 1학년 남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심산 김창숙 선생이 일제에 의해 경학원으로 격하되었던 성균관을 복원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해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유교 종단의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던 성균관대학교의 1학년 남학생들은 봄과 가을의 석전때마다 일무단을 구성해서 일무를 추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총괄 임학선 성균관대 명예교수)이 팔일무를 전담하면서 다수의 여성 단원과 소수의 남성 단원이 함께하고 있다.
.jpg)
1975년 5월23일의 여성유림회 창립은 남성 중심의 유교에서 여성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면_석전 여성참례규정 마련(편집수정).jpg)
유교신보 제416호(1995.08.15) 1면에 '석전 여성참례규정 마련' 기사가 주요 소식으로 보도되고 있다.
 1면_최근덕 제29대 성균관장 취임(편집수정).jpg)
고(故) 최근덕 성균관장은 문묘 제례에 여성의 참례를 허용하고, 향교의 실무 임원인 장의(掌議)에도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 '유교 현대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추진했다(출처-유교신문 제795호(2011.4.1) 1면의 '최근덕 제29대 성균관장 취임' 기사).
.jpg)
결혼 직후인 1957년 1월6일에 남편 이정우 수복 및 친구들과 서울 남산을 방문한 김인겸 여사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으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동안 성균관을 위해 헌신해왔다.
.jpg)
성균관 수복 가문의 김인겸 여사 부부는 성균관 유림회관 건립을 위해 자신들이 살던 한옥을 비워줬다.
지난 9월25일 오전 10시 10분 비천당에서 시작된 '공기 2576년 성균관 추기석전'에서 김인겸 여사가 '유교 종단과 성균관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시하듯' 두 손을 모은 채 봉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jpg)
성균관 유림회관 부속동 철거과정에서 문화재청은 '성균관을 통해 김인겸 여사에 대한 주거비 지원을 약속'했고, 최종수 성균관장은 합의약정서까지 작성하며 새로 구한 집의 임대보증금과 월세 지원을 약속했으나 지금까지도 임대보증금 2천만 원과 10개월치 월세 1,150만원을 지원하지 않아 집 소유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jpg)
1959-1962년 숙명여대 상학과 학부, 1963-1965년 숙명여대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과정을 다닌 성의순 원임 부관장이 1966년 2월의 석사과정 졸업식에서 부모님, 자매 등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다.
.jpg)
성의순 원임 부관장은 한국은행, 경제기획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지난 1993년 정년퇴직한 후에도 추가근무 요청을 받아 2000년 초반까지 일하는 등 엘리트 여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뒷줄 왼쪽 2번째 남성이 남편, 4번째 여성이 장남을 안고 있는 성의순 원임 부관장).

'못 말리는 할머니 유림'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지난 2022년 11월24일에 성균관 명륜당에서 성의순 '할머니 유림'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창간 53주년의 역사를 가진, 유교권 유일의 전국신문' 유교신문에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jpg)
지난 1월14일 성의순 원임 부관장이 최종수 성균관장에게 '유교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직접 전달한 헌성금 5백만 원이 엉뚱하게도 당사자가 전혀 모르는 채로 성균관 총무처 소식지인 '소위' 한국유교신문 헌성금으로 둔갑되었고(출처-한국유교신문 제2호 3면 '헌성금 내역'), 지금까지 성균관장 표창장 한 장 전달되지 않고 있다.
10월15일 오후에 오랜만에 만난 성의순 원임 부관장(왼쪽)과 김인겸 여사(오른쪽)가 환하게 웃고 있다.
25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해온 성의순 원임 부관장(왼쪽)과 김인겸 여사(오른쪽)가 두 손을 마주잡고 있다.
두 분이 성균관에서 보낸 몇십 년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손등을 서로 바라보고 있다.
오랜 역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서울 문묘 성균관을 거쳐 갔다.
거의 모든 인물이 남성이었고, 심지어 봄·가을의 석전대제(釋奠大祭)에서 일무(佾舞)을 추었던 이들도 당연히 남성이었으며, 진설(陳設, 제례를 지내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제구(祭具)와 제기(祭器), 제수(祭需) 등을 차리는 절차)도 남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난 1975년 5월23일 오후 2시 성균관 명륜당에서 성낙서(成樂緖) 성균관장, 임병진(林秉鎭) 유도회총본부 위원장, 오종식(吳宗植) 성균관 고문, 이병주(李炳主) 국회의원, 김정작 가사원장 등의 내빈과 15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한 여성유림회(女性儒林會)는 이후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이 참여하며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로 명칭을 바꾸며 확대됐다.
게다가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남녀의 역할 구분이 점점 줄어드는 등의 사회변화 속에서 언제까지나 기존 방식을 고집하며 여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제23대(1994.5.1.-1997.4.31.), 제24대(1998.1.21.-1998.10.22.), 제26대(2003.8.26.-2004.3.31.), 제27대(2004.4.1.-2007.3.31.), 제28대(2007.4.1.-2011.3.31.), 제29대(2011.4.1.-2013.4.7.) 등 여섯 차례에 걸쳐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하며 지금까지도 유림 및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유교 종단이 가장 막강한 위상을 떨쳤고, 전통성년식 등 한국전통문화의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졌으며, 심지어 장쩌민(江泽民, 1926-2022) 중국 국가주석 등 유교권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도 ‘세계에서 유교의 정신을 가장 잘 보존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유교지도자’로 인정받았던 고(故) 최근덕(崔根德, 1933-2024) 성균관장은 유교의 현대화에 힘쓰며 문묘 제례에 여성의 참례를 허용하고, 향교의 실무 임원인 장의(掌議)에도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한편 지난 1957년 수복 가문으로 시집 와서 68년째 수술 등으로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비나 눈이 오더라도 거의 매일 성균관을 둘러보고,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김인겸 여사(90세, 본지 기사 「수백 년 동안 문묘를 지켜온 수호자, ‘성균관 수복(守僕)’을 아십니까?-문화재청의 6월 말일 철거 일정 통고로 퇴거 위기에 처한 수복 집안」 /coding/news.aspx/1/1/59672 및 「미움도, 원망도 없어요. 그리움만 남았을 뿐-65년째 성균관 생활하는 '작은 거인' 김인겸 여사」/coding/news.aspx/1/1/59753 참조)와 지난 2000년 직장에서 정년퇴임한 후 우연한 기회에 성균관을 출입하기 시작한 후 25년째 거의 모든 행사와 회의에 참석하며 유림회관 지하 2층 석전교육원 강의실의 비품을 마련했고, 올해 1월14일 최종수 성균관장을 직접 만나 ‘유교 진흥을 위해 써달라’는 뜻으로 500만 원을 성균관 헌성금으로 전달한 성의순 원임 부관장(87세, 본지 기사 「인터뷰–성의순 성균관 부관장 “앞으로도 성균관, 유교, 전통문화 속에서 놀겠습니다”」 /coding/news.aspx/1/1/67819 및 「성의순 성균관 원임 부관장, 양주시 등에 기부금 전달-유림 최초의 세종문화상 시상자로, 상금에 개인 저축까지 보태서 사회공헌활동 전개」/coding/news.aspx/1/1/94672 참조)은 지난 10월15일 오후에 명륜당 앞마당에서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어 반가움을 전하고,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확인했다.
남편인 고(故) 이정우(李楨雨, 1932-2012, 성균관 수복 43년 재직) 선생과 함께 심산 김창숙 선생을 비롯한 유림 어른들에 대한 온갖 수발과 경내 정리, 석전과 분향 등의 제반 준비를 도맡았던 김인겸 여사는 지난 1988-1989년 성균관 유림회관 건립 당시 ‘앞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유림 어른들의 구두 약속을 믿고 (지금의 유림회관 자리에 있던) 가족의 한옥을 내주고 진사식당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2008년 남대문 화재사건으로 모든 문화재 안에서 살던 이들이 밖으로 쫓겨나는 시기에 유림회관 부속동 끝의 한 칸짜리 방으로 옮겼다가 문화재청의 유림회관 부속동 철거 종용의 과정 속에서 “사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겠다”는 문화재청과 성균관의 약속을 믿고 유림회관이 내려다 보이는 근처 주택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성균관이 약속했던 보증금과 월세 지원이 중단되면서 지금은 10개월째 밀린 월세로 인해 집 소유주의 압박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지금도 구청과 관계 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한국전통과 유교 문화를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들에 관한 기획서를 제출하고 담당자를 설득하는 등 애쓰고 있는 성의순 원임 부관장은 지난 2024년 10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제43회 세종문화상 시상식에서 문화다양성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대통령 표창과 부상으로 시계 및 상금 3천만 원을 받으면서 ‘유림 최초의 세종문화상 시상자’라는 기록을 세웠고, (사)세계한궁협회·유교신문·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양주향교·양주시·양주시 광적면행정복지센터 등에 상금 3천만 원을 전액 기부했음은 물론 개인 돈 5백만 원을 성균관에 헌성했으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균관 총무처 소식지인 (소위) 한국유교신문에 대한 헌성금으로 표시되고, 성균관장 표창장 한 장 받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구들처럼 자리를 탐하지도 않고,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유교 발전과 성균관에 모셔진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법을 실천해 온 두 할머니의 소리 없는 헌신은 이제는 온 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서로 확인하며, 깊어가는 가을에 그 무엇으로도 비길 수 없는 숭고함을 전한다.



![무신사,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카드뉴스 논란 확산 [유교경영리포트]](/uploads/4/legacy/photos/20260521/art_17791935224319_134c6c.jpg)

![[단독] 구리시장 경선판 흔드는 ‘유령 여론조사’... 언론사 명의 빌린 ‘불법 대리 조사’ 의혹 포착](/uploads/4/legacy/photos/editor/2604/20260417081433_gxgnwrel.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