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묘 성균관의 1957년 모습이 담긴 흑백영상 발견
신삼문·대성전·동재·추기석전 등의 장면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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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묘 성균관이 일곱 번째의 주요 문화유산으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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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로 들어가는 도로에 위치한 신삼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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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등 성현들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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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에서 추기석전을 봉행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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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앞에 제집사와 악단이 있고, 앞마당부터 동재 쪽에 참례객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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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월대 위에 위치한 등가(登歌) 단원들이 잠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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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월대 위에 위치한 등가(登歌) 단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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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이다. 1972년 8월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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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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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위치한 연세대학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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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들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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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창경궁의 주요 시설을 철거하며 만든 창경원 놀이시설을 서울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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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 가문 김인겸 여사가 결혼식 직후인 1957년1월6일에 친구들과 남산을 방문했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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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23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거행된 추계석전에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 있다.

1959년 9월29일 봉행된 성균관 추계석전 모습으로, 대성전 앞마당이 인파로 가득하다.
서울 문묘 성균관의 1957년 당시의 모습이 담긴 귀한 흑백영상이 발견됐다.
「창덕궁, 사대문, 한강 등 50년대 서울의 모습 ‘서울의 하루’(1957년)」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 22분 3초짜리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JBzE0MPxEeE&t=12s)은 당시만 해도 촬영 장비의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HD(High Definition) 화질로 보정작업을 거쳐 공개돼 있다.
1950년부터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던 서울의 모습도 깔끔해진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서울 문묘 성균관은 당시에도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압도적인 숫자와 영향력을 가지던 유림의 위상을 반영하여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깨끗한 듯한 분위기이다.
가수 임재범, 손지창 씨의 부친으로도 알려진 고(故) 임택근 아나운서(1932-2020)의 목소리를 통해 종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사직에 이어 4분 12초부터 4분 45초 사이에 일곱 번째로 소개된 (서울 문묘) 성균관은 성균관대학교로 들어가는 도로에 위치한 신삼문부터 대성전을 거쳐 추기석전에 참석한 제집사, 악단, 참례객과 그들 사이에 동재도 보이고 있는데 오늘날과 다른 점은 제집사와 악단은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멀리서 지켜보는 참례객은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북한산 및 진흥왕 순수비, 강북지역 전경, 서울 성곽,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대문, 동대문, 보신각, 청계천, 수표교, 동궐도 등이 두루 보이다가 6분 23초부터 6분 36초 사이에 다시 성균관 추기석전의 악단이 편경, 편종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기독교 전파의 역사, 정동교회, 성공회 서울대성당, 배재학당, 이화여대, 연세대, 집단으로 건설된 집, (소공동) 한국은행 앞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서울시청, 서울대 의과대학, 경매 진행 중인 어시장, 당인리발전소, 영등포지역 각종 공장, 고려대, 시내 야경(夜景), 한강 물놀이, 창경궁에서 일제에 의해 놀이시설과 동물원, 식물원 등이 설치되며 이름을 바꾼 창경원(昌慶苑), 활쏘기·야구·수영 등 각종 스포츠 경기, 서울종합경기장(예전 동대문운동장으로,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바뀜) 등도 당시의 생활상을 전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서울시의 국민학생 15만 명, 중·고등학생 10만여 명, (유교재단으로 설립된 성균관대학교를 포함하여) 대학생 2만여 명, 인구 170만 명 등 당시 현황도 알 수 있으며, 고층 건물이 거의 없이 아기자기함을 간직한 도시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색다르다.
지난 1957년 1월에 이정우 수복에게 시집와서 68년째 성균관과 함께하고 있는 김인겸 여사 정도만이 영상에 나오는 서울 문묘 성균관을 비롯한 당시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듯한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 부부도 석전 봉행 때 찾아왔던 자료들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이 때에 성균관은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한국인의 의식구조 및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유교 종단의 성지였으며 서울시민, 국민들도 함께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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