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균관·종단

광산김씨광성군종중 판군기감사공과 광성군 세일사 봉행

김용헌
2019.10.28·2분 읽기·조회 36

 

초헌관이 사당에서 판기군감사공 신주를 모시고 제의에 봉주하고 북향해 서립하고 있다.

 


 

헌관과 집사가 판군기감사고공 제례 봉행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산김씨 광성군종중은 10월28일(음력 10월1일) 춘천시 칠전동 617 모술재에서 150여명의 참사자가 참가한 가운데 판군기감사공(휘 英利) 세일사를 봉행했고, 이어  춘천시 칠전동 산41-12 광성군 묘소로 이동해 판군기감사공의 아들인 광성군(휘 鼎)의 세일사를 봉행했다.

이날 두 공의 세일사에 초헌 김완순 종순, 아헌 김건중 척약제공파 일가, 종헌 김영설 직제학공파 일가, 대축 김재학 일가, 집례 김용국 일가, 진설에 김상중 일가와 김호상 일가, 집사에 김용필 일가와 김용인 일가가 각각 맡았다.

판군기감사공의 세일사는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제상에 봉안한 후 진찬, 분향,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진다, 숙사소경, 사신, 철찬, 분축, 납주 순으로 봉행했다.

광성군 세일사는 봉주취위와 납주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판군기감사공의 의례와 같이 묘소에서 봉행했다.

참레자들은 양 세일사를 봉행한 후 모술재에서 식사하고 귀가했다. 이번 세일사에 서울, 대전, 논산에서 버스 1대씩 대절해 참례했다.

광성군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했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으나 공민왕 20년(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됐다.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광성군 세일사에서 초헌관이 분향 강신 후 재배하고 있다.

 


 

 

광성군 세일사에서 축관이 독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