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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종단

특집 - 유림사회를 진단한다 ③유림 분규의 실상은 이렇다

편집부
2016.05.31·5분 읽기·조회 12

유림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일단을 두고 흔히 유림 분규라는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사태의 실상을 살펴보면 이는 적당치 않다. 왜냐하면 분규의 주체가 유림이 아니거나 유림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이른바 재단법인 성균관 정관 개정 사건이다. 1997년 9월 재단법인 성균관은 재단 정관을 개정했다. 개정 정관은 ‘제6장 성균관’ 조항이 신설되고 그해 10월4일 당시 문화체육부 종무 담당자들의 협조로 장관 승인을 받았다.

 

당시 개정된 문제의 정관은 ‘제6장 성균관 제28조(설치와 임원 등) ① 이 법인에 성균관을 둔다. ② 성균관의 임원 및 조직과 운영 등에 관한 사항 및 향교의 직제는 이를 별도로 정한다. 제29조(시행 규정) 성균관 총회는 이 정관 규정에 의하여 제정된 성균관 운영규칙의 시행에 필요한 세칙을 정할 수 있다. 제30조(소속기간) 이 법인은 그 소속의 성균관 등 이외의 필요한 소속기관을 둘 수 있다’였다.

 

성균관이나 유림 총회를 거치지도 않고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 몇몇이 주도한 이 개정 정관으로 인해 정관상 성균관은 재단법인 성균관의 산하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이후 10여 년 넘게 벌어진 재단법인 성균관과 성균관 분규의 원인이 됐다.

 

당시 정관 개정을 주도한 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논어> 한 줄 모르는 인사들이었고 유림도 아니었다. 이들은 이 개정 정관을 근거로 성균관이나 유림 총회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성균관장도 뽑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 가짜 성균관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성균관은 재단법인 성균관 산하 기관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정상화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각종 소송과 고소고발로 파행을 거듭 했다. 그 사이 이 사태를 주도했던 자들에 의해 재단법인 성균관의 재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기간 동안 처분된 재단법인 성균관의 재산은 ① 충북 옥천군 군서면 소재 임야 4,519,746㎡, ② 서울시 영등포구 신도림동 대지 3,828㎡, ③ 서울시 소재 건물 5개동 1,972㎡, ④ 충남 천안군 병천면 임야 501,387㎡ 등 막대한 규모다.

 

재단법인 성균관에서 분규 사태를 주도했던 자들은 성균관의 대외적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전국 유림들을 기만하면서 그 와중에 재단법인 성균관의 재산을 특정인에게 헐값으로 매각했고 매각 대금의 사용처도 불분명해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성균관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 후 재단법인 성균관의 정관 개정에 협조했던 당시 문화체육부 관계자들을 확인하고 책임을 물으려 했으나 사건 당사자들은 이미 모두 퇴직하고 소재를 알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이처럼 이른바 유림 분규라고 일컬어진 사태의 실상은 대부분 소수의 유림 아닌 자들이 재정 지원이나 전문성 등을 이유로 유림 조직에 발을 붙이면서 이익을 탐하는 외부의 불순한 자들과 협조해 벌인 일들이었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사건

 


 

유림 아닌 자들이 성균관의 이권을 탐해 외부의 세력과 결탁해 벌인 또 하나의 사건이 이른바 영주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사건이다. 성균관의 이권을 탐한 자들에게 사법, 언론, 행정 기관까지 얽혀 벌어진 이 사건은 성균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룬 성과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1996년 성균관은 경북 영주시의 선비촌 건립에 힘을 더해 협조하는 한편, 가칭 ‘영주 성균관 선비정신 수련원’ 건립을 추진했다.

 

당시 영주시는 소수박물관 건립, 선비촌 조성, 단종 복위 운동 유적 정비, 소수서원 및 향교 정비, 청소년 야영시설 설치를 추진·시행 중이었다.

 

성균관과 영주시는 이 같은 사업에 뜻을 함께 하고 영주 소수서원 일원을 전통문화와 선비정신 선양의 중심지로 조성하는 데 공동 노력을 기울였다.

 

성균관이 추진한 ‘영주 성균관 선비정신 수련원 건립’ 계획은 ‘①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선비정신 계승, ② 물질문명 추구의 국민정신 개선을 위한 수련 도장 마련’을 목적으로 했다.

 

1996년 3월 작성된 건립계획안에 따르면 위치는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 일대로 하고, 영주시가 제공하는 약 16,500㎡의 부지에 연수원 본관 1,650㎡, 수련원생 기숙사 990㎡를 짓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과 강사진 등 운영은 성균관이 직영하는 것으로 했다.

 

이 같은 영주시와 성균관의 노력은 2004년 9월22일 선비촌, 2008년 10월18일 영주선비문화수련원 개원으로 결실을 맺게 됐고, 성균관이 영주선비문화수련원 운영을 맡으면서 2010년 영주선비문화수련원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됐다. (계속)

 

이상호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