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동안 문묘를 지켜온 수호자, ‘성균관 수복(守僕)’을 아십니까?
<span style="color:#FF0000;">문화재청의 6월 말일 철거 일정 통고로 퇴거 위기에 처한 수복 집안</span>
할아버지 이완산 수복(52년 재직 : 1917-1969)의 어린 시절 참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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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정우 수복(43년 재직 : 1969-2012)이 참례자들 앞에 서립해 있다.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전 현대그룹 회장)가 1992년 선거 출마 전 알묘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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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욱 수복(10년 재직 : 2012-2022)이 석전 헌관 및 제집사 앞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정우 수복과 김인겸 여사가 혼인례 직후 친구들과 남산을 찾았다.(1957년 1월6일)
김인겸 여사가 약 50년 동안 식사를 대접하던 진사식당의 툇마루에 앉아 있다.
김인겸 여사의 뒷편으로 현재 거주 중인 유림회관 부속동이 보인다.
1. 아무나 뽑지 않는 문묘 수복
지킬 수(守), 종 복(僕).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지키는 종’이다.
옛날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궁과 묘, 심지어 사당을 지키는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여러 단(壇)·묘(廟)와 능침(陵寢)에 소제를 맡은 자에게 고려의 구제(舊制)에 따라 상소(上所)라고 호칭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삼가 《주례》를 상고하오니, ‘춘관 수조엄(春官守祧奄) 8명과 하관 예복도(夏官隷僕徒) 40명이 다섯 능침을 맡아 더러운 것을 청소하고 제사 때면 정침(正寢)을 수리한다’ 하였으니, 대략 《주례》를 본떠서 상소라는 것을 수복(守僕)이라 고쳐 부르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 권80, 세종 20년(1438) 3월 3일 -
조선 왕조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사료이자 왕과 신하들의 중요한 논의, 역사적인 사건, 사회 변화상을 볼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 기록된 위의 기사에 의하면, 단·묘·능침의 소제(掃除, 청소)를 담당하던 이들을 ‘상소(上所)’라고 부르다가 이때 왕의 윤허를 얻어 ‘수복(守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미 건국 때부터 왕조를 지탱하는 정신문화의 상징이자 전국 유림의 본산으로 위치했던 성균관에도 당연히 지키는 이들이 배치되었고, 개경(開京, 지금의 북한 개성)에서 한양으로의 천도와 이후의 여러 격변 속에서도 수복은 청소뿐만 아니라 분향, 석전 등의 각종 제례 준비, 유생들의 식사 보조, 숙직 및 치안까지 담당했다.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아무 사람이나 되는대로 뽑았겠거니 생각할 수 있으나 다음의 기록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성균관 동지관사(成均館同知館事)의 뜻으로 아뢰기를, “문묘(文廟)의 수복(守僕)에 대해서는 종묘와 사직의 수복의 예에 따라 시재(試才)하여 가려 뽑은 별단을 계하받도록 한 정식이 있습니다. 수복 안재악(安載岳)이 스스로 물러났으니, 그 대신에 생도수복(生徒守僕)을 시재하여 가려 뽑은 다음 삼망(三望)을 갖추고 낙점을 받기 위하여 별단에 써서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승정원일기』 고종 27년(1890) 8월 24일 -
종묘, 사직단과 함께 성균관의 수복은 특별한 존재들이므로 세 명의 후보자 명단을 올려 조정의 낙점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증명한다.
물론 구한말은 이미 왕조의 기틀이 상당히 흔들리던 시기였으므로 이런 규정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적용되었는지는 남아있는 문헌이 거의 없어 확인할 길이 없지만 ‘사람을 신중하게 가려 뽑겠다’는 기조 속에서 나온 조치였다.
2. 현재의 수복과 수복 집안
2022년 5월말 현재, 성균관의 수복은 이욱(李旭, 1966년생) 씨다.
선대(先代)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할아버지 이완산(李完山, 1902-1969, 52년 재직), 아버지 이정우(李楨雨, 1932-2012, 43년 재직) 선생 다음으로 10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욱 수복의 어머니이자 지금도 봄, 가을의 석전대제 때마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성균관 제주(祭酒)’를 빚고 제물을 준비하는 김인겸(金仁謙, 1936년생) 여사는 성균관에서 수복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이정우 선생의 모습을 좋게 본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경기도 안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살다가 스물 두 살에 시집와 성균관에서 세 아들을 낳고 키웠다.
시조모, 시부모까지 모시면서 성균관을 찾는 손님들 대접과 동재, 서재에 기숙하던 학생들의 식사 준비와 뒷정리 등까지 담당하다 보니 한평생 편히 살기 어려웠다.
수복으로 일하던 시아버지와 남편이 성균관에서 받는 수고비가 워낙 적어 지금의 유림회관 부속동 자리에 있던 판자집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여느 어머니들처럼 세 아들 중 둘을 대학에 보내는 등 자식 뒷바라지에도 헌신했다.
시어머니께 전수받은 비법으로 ‘성균관 제주(祭酒)’를 만들면 그걸 먹어야 각종 시험에 쉽게 붙는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 병씩 얻기 위해 성균관을 찾았다. 대통령 후보를 지낸 어느 인사의 아버지가 남편과 성균관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3. 퇴거를 통보받은 김인겸 여사와 수복 가족의 소망
그렇게 한평생 성균관을 위해 애쓴 그녀에게 얼마 전 날벼락이 떨어졌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적어도 100년 동안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과 관심이 거의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림과 수복들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제례 봉행, 시설 관리, 건물 보존 등을 해왔으나 법률적인 내용에 어두웠던 사이에 성균관이 미등기 상태인 것을 파악하고 등기작업을 완료함으로써 법적으로 성균관의 주인이 된 문화재청이 오는 6월 말까지 현재 거주 중인 유림회관 부속동 건물의 8평 크기 방에서 퇴거하도록 통보해 왔다.
김 여사와 가족들은 원래 성균관 안의 수복청(守僕廳)과 제기고(祭器庫) 일대에서 거주하며 분향·고유·석전 등의 각종 제례 준비에 참여함으로써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직무를 수행해왔으나 지난 2008년 2월10일에 있었던 ‘남대문 방화사건’의 여파로 문화재 보존에 필요하다며 성균관의 모든 건물에 거주 및 생활을 하던 인원들이 철수하는 와중에 성균관의 영역에서 나오게 되었다.
예쁘고 고운 새색시였다가 성균관과 함께하며 여든여덟 살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김인겸 여사, 수복 집안의 장남으로 성균관 건물에서 태어나 뛰어놀다가 어느새 환갑이 지났으나 존경받던 성균관의 모습을 회복하길 염원하는 이태형 대표(1959년생), 큰형과 작은형을 대신해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부친 작고 후 10년째 수복의 직임을 맡아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상만큼 못하는 것같아 죄스러워하는 이욱 수복.
돈의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고, 누구보다 앞서가는 것이 성공의 증명인 것처럼 흘러가는 세상에서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상은 약삭빠르고 계산적인 사람들보다 때로는 느리지만 우직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하기도 한다.
이들의 바람은 지금 단 한 가지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성균관만 생각하고 조상 때부터 내려온 유업(遺業)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김 여사가 생존하는 동안만이라도 성균관 바로 옆에서 생활하며 아침, 저녁으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그동안 배우고 익힌 무형의 유산들을 후손에게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 국회,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 기관을 방문하여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 장남 이태형 대표는 “단순히 우리 어머니와 집안을 잘 봐달라는 우격다짐이 아니다. 앞으로도 성균관의 소중한 유·무형의 자산은 계승, 발전되어야 하기에 보통의 철거민처럼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원으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1인 시위, 소송 등의 과정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입장을 전하고 호소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성균관을 출입하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는 “유교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중국과 한때 번창했던 일본 등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석전(釋奠) 등의 유산들이 제대로 된 보존대책도 없이 거의 방치 상태다. 그나마 지금은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국가적 차원의 계획과 사회적 관심, 전수자 양성 등을 통한 인적자원의 확보 등이 하루빨리 진행되어야 이를 통해 민족적 자부심 함양, 관광 자원화를 통한 세계적 영향력 확대, 문화강국의 기반 조성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퇴거 통보를 계기로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길 기대한다”며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퇴거시한인 6월 말일까지는 이제 한 달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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