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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종단

서울 문묘 성균관에 ‘이상한 등기과정을 진행’한 국가와 문화재청

<span style="color: rgb(255, 0, 0); font-family: NanumGothic, sans-serif; font-size: 14.6667px; text-align: justify;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서울 문묘 일원 종합정비계획(2009, 종로구청)'의 내용과 문제</span><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family: NanumGothic, sans-serif; font-size: 14.6667px; text-align: justify;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점</span>③</span><div id="hwpEditorBoardContent" data-hjsonver="1.0" data-jsonlen="6258"><br></div>

오흥녕
2022.07.28·11분 읽기·조회 40

 

 

서울 문묘 성균관의 토지 등기부등본에 1972년 9월28일 소유권 보존등기 내역이 명시돼 있다.

 

 

 

건물 등기부등본 왼쪽 상단에는 제 몇호 건물이고, 무슨 건물을 뜻하는지 대부분 표시돼 있다.

 

 


 

 

서울 문묘 제24호 건물의 명칭이 '재학당'으로 잘못 기록돼 있다.

 


 

 

일명 '수복청'이라 불리는 수복가족 거주공간에는 지금도 '대학당(戴學堂)' 현판이 부착돼 있다.

 


 

서울 문묘 성균관에 대한 관리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2009년 종합정비계획뿐만 아니라 대법원 인터넷등기소(www.iros.go.kr)를 통해 주소지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으로 검색되는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하고, 제대로 확인할 수 없거나 의문스러운 부분은 현재의 관리청인 문화재청에 공문을 통해 질의했으며, 비슷한 유형인 종묘·경복궁 등의 국가문화재와 비교하여 차이점을 파악했다.

 

 

1. '판도라의 상자' 서울 문묘 성균관의 등기부등본

 

등기부등본은 부동산에 관한 권리관계를 적어 두는 등기부를 복사한 증명문서로 가장 윗부분인 ‘표제부’에는 토지나 건물의 소재지, 용도, 구조 등이 기재되고, ‘갑구’에는 소유권에 관한 사항이 접수된 날짜순으로 기재되면서 아울러 압류와 가압류, 가처분, 경매 신청, 예고 등기, 환매 등기 등 권리관계의 변경, 소멸에 관한 사항도 표시된다. 마지막으로 ‘을구’에는 소유권 이외의 권리에 관한 사항들이 표시되는데 여기에는 저당권, 전세권, 지역권, 지상권의 설정 및 변경, 이전, 말소 등이 적힌다.

 

현재 우리나라의 토지와 건물은 주소만 알면 누구나 대법원 인터넷등기소를 통해 열람, 발행이 가능하므로 지금부터 설명하는 내용들도 누구나 직접 접속해서 확인할 수 있다.

 

본지가 처음 파악했던 서울 문묘(주소지: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 53)의 등기부등본은 토지 1건과 건물 34건(제1호-제34호, 성균관대학교 정문경비실까지 포함, 제2호는 없음) 등 총 35건이다.

 

토지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서울 문묘의 토지 면적은 34988㎡로 평(坪)으로 환산하면 10602.4평 정도가 된다. 1972년 9월28일 소유권 보존등기가 이루어져 소유자는 ‘국가’, 관리청은 ‘문화재청’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당시는 문화재청이 외청이 아니라 문교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으로 존속했다. 즉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한 번도 등기되지 않은 부분이 이때 처음으로 등기됐다.

 

그런데 건물 등기부등본이 조금 복잡하다.

 

제1호 건물은 ‘연와조와즙 평가건 사무실 건평 21평’으로 1960년 3월10일 처음으로 소유권 보존등기가 이루어졌고, 현재 소유자는 서울특별시다. 예전 사진들을 살펴보면 2008년 남대문 방화사건 이후 종로구청이 문묘 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시대 임금들이 성균관을 방문했을 때 가마에서 내리던 장소인 하련대(下輦臺) 앞에 컨테이너 관리사무소를 설치했고, 지금은 주차장에 규모를 키워 이동했는데 아마 이 건물을 가리키는 듯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구운 벽돌(=연와조)도 기와지붕(=와즙)도 현재는 없으니 등기부등본 내용 자체가 잘못됐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에 문의하니 ‘제1호 건물은 서울특별시에 문의한 결과 해당 소재지에 없는 것으로 보여지므로 자세한 사항은 서울특별시로 문의하기 바란다’는 답신이 왔다.

 

제2호 건물은 등기부가 없는 것으로 봐서 예전에는 있었던 건물이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제3호 건물은 ‘목조 와즙 평가건 숙사 건평 117평2홉5작과 부속 목조 와즙 평가건 식당 건평 8평7홉5작’으로 서울 문묘 건물 대부분은 등기부등본의 맨 윗부분에 건물명을 표시하고 있는데, 앞의 제1호 건물과 마찬가지로 제3호 건물은 어디를 뜻하는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숙사’와 ‘식당’이라는 표현과 대략적인 평수로 추정하면 성균관의 유생들이 식사했던 공간인 진사식당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서울 문묘 건물들 중 제1호 건물과 성균관대 정문경비실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소유권자가 국가로 되어 있지 않는데, 왜 국가가 아닌 다른 곳이 소유주로 등기되어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고, 나머지 29개 건물을 2014년에 국가가 소유권 보존등기한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종로구청이 지난 2009년에 발간한 ‘서울 문묘 일원 종합정비계획’ 174-175쪽에서는 310.31㎡(93.86평)로 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온돌방 등을 제외하고 대략 계측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제4호 건물 유림회관, 제5호 건물 유림회관 부속동은 2002년 11월12일 재단법인 성균관이 소유권 보존등기를 했다가 1988년 12월15일자로 기부채납했다는 명목으로 2007년 5월9일에 국가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2000년에 재단법인 성균관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사건번호 2000가합45889 채무부존재확인, 2000가합87937 소유권이전등기)을 제기했으나 다음해인 2001년 3월23일 ‘원고 재단법인 성균관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는 피고 대한민국에게 1988.12.15. 기부채납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서울지법 제42민사부의 판결이 선고됐다.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은 서울지방법원 중부등기소에 ‘확정판결에 의한 건물등기를 신청’했고, 이때 제출된 건물소유권보존등기촉탁에 따라 연면적 6274.29㎡의 유림회관(지상 3층, 지하 2층)과 연면적 977.7㎡의 부속동(지상 2층)은 소유자-국가, 관리청-문화재청의 형태로 소유권이 이전 처리됐으며, 성균관은 2-3년 단위로 문화재청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정액의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문묘 일원 종합정비계획(2009, 종로구청)에 따라 진행한다’고 밝힌 문화재청이 유림회관 부속동 철거를 서두르고 있고, 지난 6월30일자로 입주상인, 입주민들에게 퇴거조치를 통고하여 대부분 나갔으나 수복집안에 시집와서 63년째 성균관을 돌보고 있는 김인겸 여사(본지 제1069호(2022.6.15일자) 3면 ‘미움도, 원망도 없어요. 그리움만 남았을 뿐(/coding/news.aspx/1/1/59753) 기사 참조)는 퇴거를 거부하고 거주 중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유림회관 부속동 철거를 위한 예산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내려와 있고 계획도 세워져 있어서 지금이라도 당장 공사가 가능하다. 철거 후에는 평지화를 진행하면서 화단을 설치할 예정이다”고 이후 방향을 밝혔다.

 

제6호 건물 고직사, 제7호 건물 대성전, 제8호 건물 동말문, 제9호 건물 동무, 제10호 건물 동월랑, 제11호 건물 동재, 제12호 건물 명륜당, 제13호 건물 묘정비각, 제14호 건물 비천당, 제15호 건물 서리청, 제16호 건물 서말문, 제17호 건물 서무, 제18호 건물 서문, 제19호 건물 서월랑, 제20호 건물 서재, 제21호 건물 신삼문, 제22호 건물 어삼문, 제23호 건물 육일각, 제24호 건물 재학당, 제25호 건물 전사청, 제26호 건물 전향문, 제27호 건물 정록청, 제28호 건물 제기고, 제29호 건물 존경각, 제30호 건물 탕평비각, 제31호 건물 향관청, 제32호 건물 협문1, 제33호 건물 협문2, 제34호 건물 희생청 등 29건은 일괄적으로 2014년 1월6일 소유권 보존등기가 됐다.

 

문화재청의 위탁을 받은 종로구청에서 관리사무소를 설치해 CCTV 확인, 순찰 등 단순관리만 하고 대부분의 건물들은 문을 닫아두고 있으며, 성균관에서 분향(焚香)·고유(告由)·석전대제(釋奠大祭) 등의 행사 때 명륜당, 대성전, 동무, 신삼문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제24호 건물 재학당은 일명 수복청(守僕廳)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서울 문묘를 대대로 지키던 수복 가족이 거주하며 관리하던 곳인 대학당(戴學堂)을 잘못 표기했다.

 

언제부터 표기가 잘못되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지만 ‘짊어질 대(戴)’ 한자와 ‘실을 재(載)’ 한자를 혼동해 생긴 결과다. 지난 2006년 문화재청에서 대대적으로 발간한 ‘서울 문묘 실측조사 보고서(上)’ 212쪽의 수복청 설명글에도 ‘재학당’이라는 잘못된 이름이 적혀 있고, 2014년 1월6일 소유권보존등기 때도 ‘재학당’으로 잘못 등록됐다.

 

문화재청에서 받은 ‘건물소유권보존등기촉탁’ 서류에 의하면, ‘등기원인과 그 연월일’을 ‘2008년 6월26일 소유자 등록’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등기부등본에 그 날짜의 어떠한 행위표시가 없고, 해당 부동산에 대해 제일 먼저 하는 등기인 소유권보존등기가 2014년 1월6일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다. 2008년 6월26일에 했다는 소유자 등록은 무엇을 말하는지 문화재청에 문의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으로 검색되는 마지막 건물은 ‘성균관대학교 정문경비실’로 2015년 1월14일에 소유권 보존등기되었고 소유자는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문경비실 자리는 서울 문묘 영역이고, 문묘 관리청은 문화재청이므로 성균관대학교가 토지이용료를 둘러싸고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해 지금은 매년 일정 금액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비천당 앞쪽 도로에 위치했던 주차요금징수소를 더 북쪽에 위치한 600주년기념관 앞으로 옮겼다. 정문부터 비천당 앞까지의 출입도로가 문묘 영역이다보니 성균관대 소유 부지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건물들 외에 현재 존재하고 있으나 등기부등본이 없는 건물들도 있는데 직방, 비복청이 그 예이다.

 

‘직방(直房)은 정록청 마당 우측에 서향하여 자리하고 있는 건물로 업무를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어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고 있지 않다’(2009 서울 문묘 일원 종합정비계획, 169쪽)

 

‘비복청(婢僕廳)은 식사를 제공하는 여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으로 서리청과 진사식당 사이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비복청 주변은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과 남쪽에 협문을 두어 서리청 부분과 진사식당 쪽으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다’(2009 서울 문묘 일원 종합정비계획, 173쪽)

 

문화재청, 종로구청 모두 서울 문묘에 직방과 비복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금도 알고 있을 텐데 왜 이 건물들이 등기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이외에 서울 문묘 포함지역이 더 있는지에 대한 문의에 대해 문화재청은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 53-1(403.3㎡), 53-2(3267.1㎡), 53-3(7.9㎡), 53-4(293.2㎡), 53-5(646.9㎡), 53-6(119㎡), 53-7(2㎡), 53-37(337.1㎡), 53-38(24.9㎡)도 사적 서울 문묘와 성균관 지정구역에 포함된다’고 알려왔다. 

 

즉, 명륜3가 53의 34988㎡(10602.4평)와 부근의 5101.4㎡(1545.8평)을 합해 40089.4㎡(12148.3평)의 면적이 문화재청이 파악하고 있는 서울 문묘 성균관 영역이다.(다음 기사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