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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종단

[창간 54주년 특집] 유교신문 과월호에 기록된 여성유림 ③유림여성들이 바라고 있는 일-호영희

<span style="color: rgb(255, 0, 0);">“고유하고 소중한 전통적 윤리와 미풍양속을 옳고 튼튼히 다지자”</span>

오흥녕
2023.06.08·8분 읽기·조회 21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림월보(儒林月報) 1975년 5월25일자 6면에 게재된 호영희(扈英姬, ?-1991) 여성유림회 부회장의 글 ‘유림여성들이 바라고 있는 일’을 소개한다.

 

 

 

호 부회장은 조애영 초대회장과 함께 유림월보에 종종 글을 게재하며 여성유림의 상황과 과제 등을 알렸고,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제2대 회장으로 재임하며 여성유림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가 1991년 8월1일에 연합뉴스가 보도한 부고 기사를 통해 그해 7월31일 저녁에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음이 확인된다.

 


 

유림여성들이 바라고 있는 일

 

 

호영희 여성유림회 초대 부회장

 

 


 

우리의 고유하고 소중한 전통적 윤리와 미풍양속이 하나하나 파괴되어 몹시 안타깝고 비통스러운 이 시점에 완고하기만 하던 성균관에서 부녀들의 활약에 기대를 두고, 여성유림회의 발족을 추진시키게 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다행스러운 것같습니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자 많은 여성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정신적 지주를 좀 더 옳고 튼튼히 다지려는 모임에는 소홀한 점이 많았던 것같습니다.

 

일제 때 태어나 국가나 민족을 모르는 채 자라고 해방되면서 철이 들려했으나 너무나 많은 격랑을 겪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불어온 외래의 심한 바람은 감당하기 벅차게 여기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취해야할 점과 버릴 점을 구분하고 정리해야할 이성의 시기가 온 것같습니다.

 

우리는 숨김없는 양심에서 우리 여성 자신들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예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너무 한가롭게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태여 시대적, 국가적 요청을 말하기 이전에 생의 향유(享有)에 대한 근본조건을 어기는 것같습니다.

 

돈이 많은 집 사람일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부인일수록, 수많은 일군을 두고 거느리며 다만 자신들의 몸치장과 건전치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뿌리가 뻗어 사회악이 잉태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같습니다.

 

둘째, 현대의 풍조는 어쩌다가 많은 남편들을 무능하게 만들고, 여성화되어가는 기현상까지 몰고 왔습니다. 매일 아침 오백원의 용돈을 타내기에 눈치를 살피는 남편들이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우리들 할머니와 어머니들에게 지나친 횡폭을 부리던 일을 대신해서 사죄하느라고 그런다면 생각할 여지가 있으나 결코 올바른 부부관(夫婦觀)도 아니고, 가정경제도 못되는 것같습니다.

 

부인들의 경제적 독점은 부모, 형제, 자녀들 앞에서 위축되고 소심한 남편을 만들고, 많은 가정의 불화의 원인도 되었습니다. 부인 앞에서 군림하고, 축첩(畜妾)하고, 폭권(暴拳)만 자제된다면 역시 가정의 경제대권은 남편이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같습니다. 도박부인(賭博夫人), 보석부인(寶石夫人), 부동산브로커부인 등 불명예스러운 여성들이 생겨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같습니다.

 

셋째, 인생을 너무 쉽고 편리하게 사는 태도입니다.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의리나 도덕을 생각하기 전에 자기중심으로 편리하고 득되게만 해결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적은 문제인 듯하나 해방 후 갑자기 늘어난 이혼율과 또 서슴없이 개가(改嫁)하는 풍습을 몰고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요새 젊은이들이 포장지의 노끈을 차근히 풀려는 노력없이 가위나 칼로 싹싹 끊어버리는 버릇은 꼭 고쳐주어야할 숙제입니다.

 

넷째, 소비가 미덕이라고 떠들던 엉터리 경제학자들의 이론에나 매혹된 듯 너무 지나친 낭비를 한것같습니다. 집집마다 묶고 쌓인 농 속에서 헌옷들을 상기할 것까지 없더라도 종로 양편에 즐비한 양장점, 변두리와 중심지를 가리지 않고 들어선 양품점, 양화점이 너무 많은 얘기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밥풀 하나하나를 아끼시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할 때 정말 이렇게 살면 벌 받는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다섯째, 시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유림이라는 제하(題下)의 글에서 첫째로 다루려는 공식을 피하고자 끝에 와서 생각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오던 가산(家産)으로 살림을 영위하고 부모의 권한으로 며느리를 얻고 살림을 내고 하던 때는 시부모의 권위가 대단하고 절대복종의 관계가 유지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경제형태나 사회적 조건으로 볼 때 옛날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민법에 규정하고 있는 서구풍의 장자(長子)만의 호주상속과 차자(次子) 아래는 결혼과 동시에 분가해서 일가를 신설독립하는 소위 핵가족제도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를 이간시키는데 부채질을 했고, 옛날에 부모를 의지하던 남편들은 아내를 의지해서 이루어진 가정에서 부모들의 존재란 너무 보잘것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이 과도기에 며느리를 거쳐서 시어머니가 된 여성들도 많은 것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도태로 옛날처럼 구박받는 며느리가 있어서도 안 되고, 더구나 노경(老境)에 외로움과 서러움에 눈시울을 적시는 단 한 분의 시어머니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이 문제는 모든 문제 중에서 으뜸으로 해결되어야할 문제입니다.

 

 

이와같이 욕스러움을 참으면서 우리의 반성을 했습니다만 우리 여성으로서 더욱이 유림부녀로서 꼭 하고자하는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가족법 개정안 중 동성동본(同姓同本) 금혼제(禁婚制)를 폐지하자는 문제에 대한 견해입니다. 그 문제를 들고 나오게 된 동기를 생각하기 이전에 괴사(怪事)라는 선입견이 강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데, 상대방의 성도, 본도 따져볼 지각도 없이 맺어진 사람이라면 법을 고쳐서 구제해놓은들 무슨 규약을 범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합니다. 또 근친혼은 우생학적으로 나쁘다고해서 소나 돼지, 하물며 새들까지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둘째, 안방 깊숙이 스며드는 매스미디어에서 받는 공해를 막아야합니다. 170만 대에 달하는 TV는 한 방에 5, 6인이상의 가족을 모아놓고 어린이와 노인,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해괴망칙한 재롱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아버지들의 늦바람, 엄마들의 추태를 들추어내어 울고 웃어가며 사실화하기에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애들은 혹시 우리 아빠나 엄마도 저렇지 않는가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봅니다. 절도, 강도 등 강력사건을 실연해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인지? 조촐하고 오붓하게 살고자 하는 가족들에게 무시무시한 호화주택을 보여주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이건 너무 하는 일인 것같습니다.

 

TV 3개 방송국이 인기 위주의 시청율 확보에만 혈안이 될것이 아니라 제각기 개성을 찾아서 흐뭇하고 권태롭지 않은 프로가 되도록 우리 주부들이 감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배달되는 신문 문제입니다. 세계 어느 구석에서 어느 미친(?) 사람이 나체가 되어 뛰었다하면 몇 호 스트리킹이라고 친절하게 그 알량한 사진을 싣습니다. 여자들의 벗은 사진이 나지 않는 신문도 드물고, 이 사진이 실리지 않는 날도 없습니다.

 

더욱이 신문소설의 외설적이고 음란한 내용과 삽화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온 식구가 돌려가면서 보는 것이 신문이라면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제 그만 살고 가야지! 더 살다가는 무슨 해괴한 꼴을 볼까하고 두려워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저 싱그러운 푸른나무를 보고, 그 저편에 티 없이 깨끗한 창공을 다시 한번 응시하면서 한 여성의 푸념은 메아리쳐 되돌아올지언정 유림의 깃발 밑에 묶인 많은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소망을 풀어질 듯한 기대에 유림부녀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