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과 종교관련 행사’에서 유교 제외- 천주교를 시작으로 불교, 민족종교, 기독교는 개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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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서 '천주교' 행사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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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과 종교 관련 행사'는 각 종단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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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천주교에 이어 불교, 민족종교, 기독교 관련 행사도 예정되어 있음을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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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6주년을 맞이한, 유교권 유일의 전국신문'인 본지는 제1115호(2024.5.15) 3면에서 파리장서운동 당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공개하는 등 선배유림의 항일독립운동 정신과 실상을 앞장서 보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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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올해 신년호인 제1130호 1면에 이종찬 광복회장의 '광복 80주년 특별신년사'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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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9월3일 개최된 제63회 국무회의에서 이진희 문공부 장관은 ‘독립기념관(가칭) 건립 국민성금 모금 계획’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정부와 공무원들의 적극 지원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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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한 전국적인 성금 모금은 큰 화제를 낳았다(1982년 10월 경남 함양군 함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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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경부고속도로 목천IC'를 통해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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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한국인' 상(像)은 지금도 독립기념관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독립기념관(관장 김형석)이 올해 계획하고 있는 ‘한국독립운동과 각 종교 관련 행사’에서 일제강점기에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유교는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홈페이지(https://i815.or.kr) 첫 화면에서 ‘독립의 감동을 국민과 누리는 모두의 기념관’을 모토(motto, 살아 나가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표어나 신조 따위로 삼는 말)로 삼고 있는 독립기념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독립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한국독립운동과 각 종교의 관련 행사를 추진하겠다’면서 첫 번째로 3월21일부터 4월16일까지 ‘2025 한국독립운동과 천주교’ 행사를 시작했다.
제정 러시아의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1853-1943)와의 회담을 위해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 도착한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저격해 사망케 했던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義士)의 순국(殉國) 115주기를 맞아 특별기획전, 추모미사, 음악회, 영화 <하얼빈> 특별상영, 상설전시관 특별해설, 수장고 탐방을 통한 원본 소장자료 공개, 특강, 체험교육, 캘리그라피 쓰기 등 다양한 행사 및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천주교 독립유공자들의 삶과 활동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어서 5월에는 불교, 10월에는 민족종교, 12월에는 기독교 행사를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유교는 여기에서 제외됨으로써 '3·1운동 및 파리장서운동 106주년, 광복 및 성균관 복원 8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력, 가족들에 대한 부양과 보호, 체포·구금·고문·징역을 통한 인신(人身)의 구속 등 모든 것을 희생하며 맞서고, 불굴의 항일독립정신을 드날렸던 유교와 심산 김창숙 선생 등 선배 유림들의 모습은 독립기념관을 찾는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모습이 되었다.
이종찬(李鍾贊, 1936-현재) 광복회장의 ‘[특별 신년사] 광복 80주년,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맞이하며’를 인터넷판(/coding/news.aspx/6/4/93472)과 지면신문 제1130호(2025.1.1.) 1면에 게재하며 독자들과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던 본지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유림들의 의견을 모으고, 지금 시점에서의 유교 행사 추가추진 가능여부를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한편 독립기념관 건립은 1945년 해방 후 오랫동안 논의는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981년 이진희(李振羲, 1932-현재) MBC 사장의 ‘개국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나 국가적 사업을 민간이 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논란 속에서 좌절된 후 지난 1982년 7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의 와중에 국회에서의 본격적인 논의를 거쳐 그해 8월28일 각계 대표 55인이 참여한 민간조직 ‘독립기념관건립준비위원회(위원장 박순천)’가 발족하면서 500억을 목표로 하는 범국민 성금 모금을 통한 건립계획이 발표됐다.
민간에서부터 시작된 움직임은 한국신문협회 등 언론들이 힘을 합하며 급속히 확산되었고, 곧이어 ‘독립기념관건립준비위원회’가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안춘생)’로 바뀌며 예산 확보 어려움 등으로 소극적이었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나 1982년 9월3일 개최된 제63회 국무회의에서 (MBC 사장이었다가 입각한) 이진희 문화공보부 장관이 ‘독립기념관(가칭) 건립 국민성금 모금 계획’을 전두환(全斗煥, 1931-2021)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이에 대해 대통령은 ‘정부와 공직자들이 성의를 다해 이 운동을 지원하고 산하기관·정부출연기관의 임직원들에게도 권유하여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개인이나 법인이 내는 기부금을 법인세법 및 소득세법에 의한 지정기부금으로 간주해 손금(損金, 손해가 난 돈) 처리하고, 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기 이전에 기부한 성금도 소급해 손금 처리하기로 하는 등의 국세청 발표가 있었고, 500억 원의 목표액 중 130억 원을 민간기업의 헌금으로 충당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 속에서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4단체가 100억 원 모금을 결의하는 등 당시 군사정권의 막강한 힘까지 가세하며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전국 14개 후보지 중 충남 천원군(天原郡) 목천면의 흑성산 일대가 최종 건립지로 결정되고, 광복 38주년인 1983년 8월15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지출사항이 대폭 늘어나던 분위기 속에서 국회 추산으로도 174억 원이나 공사비가 부족(1985년 11월 문공위 소위에서의 배중섭 전문위원 보고사항)한 문제는 1986년 8월15일로 예정했던 개관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었고, 게다가 그해 8월4일 오후 10시경 발생한 화재로 본관 건물이 거의 전소(全燒)되며 TV 뉴스 중계와 신문 보도 등을 통해 사실을 접한 국민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는데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8월26일 이원홍(李元洪, 1929-현재) 문공부장관 등 10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대폭 개각을 통해 민심 수습을 시도했다.
복구 및 마무리 공사를 통해 1년여가 지난 1987년 8월15일 광복절에 정식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초·중·고등학생 등 단체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봐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2017년 7월1일에 5,000만 번째 관람객이 입장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지난 38년간 전시, 교육, 연구를 아우르며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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