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포럼

순천의 동학농민혁명 정신 계승 위한 전시회와 용역 중간 보고회 성료

박병섭 기자
2026.05.18·6분 읽기·조회 74

전남 순천시의 동학농민혁명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신 계승을 모색하는 방안이 민관 협력으로 모색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순천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소 역사만화전 마지막 전시가 있었으며, 바로 이어서 옆 시청각실에서는 ‘순천 동학농민혁명 학술자료조사 및 정신계승방안 연구’ 용역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4월 28일부터 순천영호도회소 기념사업회가 마련한 동학농민혁명 순천 영호도회소 역사화 전시에는 여수의 박금만, 장흥의 박홍규, 부안의 심성희 작가가 그린, 크고 작은 역사화가 전시되어 지역의 관심을 모았다. 곡성, 제주 등 먼 거리에서도 전시회를 보러 왔으며,지역의 중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의미있게 활용됐다.

 

15일 용역 보고회 식전 행사가 된 역사화 설명 때는 김문수 국회의원과 신민호 도의원, 조옥현 순천문화원장, 여수와 무안 등의 ‘동학’ 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김문수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전북 쪽에서는 활발하게 하고 있고, 교과서에도 나왔는데, 순천에서 이렇게 크게 일어났는지 솔직히 몰랐다. 이를 알려주셔서 너무 고맙다”며 “우리 민주주의의 깊은 뿌리인 동학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금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쉽지 않았음을 절절하게 털어놓았다. 오랫 동안 여순항쟁 관련 그림을 150점을 그렸다가 독립운동사를 그려야 되겠다고 작정하다 동학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여수의 동학에서 가장 먼저 그렸던 작품이 영호도회소 소속 동학군이 남해로 가는 장면을 먼저 그렸다.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남해의 포구도 다니고 배를 보러 목포에도 다녀왔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더 큰 규모로 압도적인 느낌이 들게 그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지 않은 두 작가의 그림을 김명재 사무국장이 설명했다. 심성희 작가는 일본이 경복궁을 침탈하자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전국의 동학도인들에게 항일 기포령을 내린 모습을 그렸다. 박홍규 작가의 ‘개벽의 섬 덕도’는 15세의 나이로 새벽녘 쫒기는 동학군 600여명을 옹기배로 피신시켜 구해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역사가 아니다. 동학은 오래된 미래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뿌리이며 열매이다. 동부 6군의 중심인 우리 순천은 순천을 너머 영호남의 연대를 통해 그날의 역사를 올바로 선양하며 이루지 못한 동학농민군들의 대동세상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을 마무리했다.

 

이어 옆 시청각실에서는 ‘순천 동학농민혁명 학술자료 조사 및 정신계승 방안 연구’ 용역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이번 용역을 맡은 원광대의 정명희 박사의 진행으로 나옥현 순천시 국가유산과장의 취지 설명과 강성호 인문학술원장이 축사를 했디. 나 과장은 “용역 결과가 실행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했으며, 강 원장도 공감을 표했다.

 

 

원광대학교 용역수행 연구진은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순천의 상황을 정리해서 제시해 주었다. 영호도회소의 조직 구성을 찾아내어 간결하게 정리했으며, 순천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59명을 제시했다.

 

주요 인물로 김인배, 김화서, 오윤영을 꼽았으며, 일본 기록에서 완산 전투에서 활약한 14세의 소년 장수 이복룡 비롯하여 새롭게 찾은 인물을 제시했다.

 

순천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순천부 관아터,선암사 집결지, 낙안읍성 전투지, 외서면 돌이치(도리재), 상사면과 월등면의 은거지를 꼽았다.

 

다른 나라의 역사 기념 시설과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관련 공간을 사진과 설명으로 제시했다. 또한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상징 공간으로 ‘연대의 원:8인의 영호 라운드’를 제시했으며, 호남과 영남을 잇는 도보여행길과 기념 시설 안내판 표준 디자인 제작 등을 제시했다.

 

토론에서 조선대 노영기 교수는 “전시관을 채울 수야 있겠지만,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유의 사항을 지적했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순천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기념사업이나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순천시와 영호도회소 기념사업회와 같은 시민단체가 관심을 갖는다면 역사적 의미를 발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순천부읍성과 같은 상징적인 공간을 문화재로 미리 지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순천의 동학혁명 참여자가 밝혀진 분이 50여 명이 되는데도 유족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 바 유족들을 발굴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명재 사무국장은 “전국에 있는 동학 관련 공간들이 학살 위주로 되어 동학의 사상이 빠져 있다. 사인여천,광제창생같은 정신적인 요소들도 강조되어야 한다. 동학 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여기에 순천 관련 자료가 있는데 이번의 발표 자료에 빠져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광양에서 온 한 참여자는 영호도회소 주요 인물의 출신지가 잘못 표기되었음을 지적했다. 순천에서 온 다른 참여자는 “낙안권의 상황과 인물이 빠져 있으며, 기념관 등을 만드는 것은 많은 재원이 들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세울 수 있는 상징탐을 제안해도 좋겠다. 박금만 화백의 역사화에서 보듯 순천의 상징적인 공간인 연자루와 동헌의 복원은 필수적이다는 점을 보고서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진지하게 참여한 한 참석자는 “형식적인 보고회가 아니어서 좋았다. 순천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이 늦었지만 제대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날 역사화전과 보고회 자리에는 유형춘 원임전교가 참석하였는데, 월등면 섬계마을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선조들을 밝혀내고자 자료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