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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전례 없는’ 크리스마스 대형트리 설치 등 기독교 우선 정책 실시

<span style="color: rgb(255, 0, 0);">JTBC 뉴스룸, 관내에서 기독교 예배 진행 등 사유화(私有化) 사실 단독 보도</span><br style="color: rgb(255, 0, 0);"><font color="#ff0000">'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진작부터 직원들의 우려 목소리 높았던 것으로 확인돼<br>여러 종교를 두루 섭렵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기독교 이력만 유독 크게 강조해</font>

오흥녕
2025.08.28·12분 읽기·조회 49

 

 

 

 

JTBC 「뉴스룸」은 지난 8월27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관내 기독교 예배 진행 등을 단독 보도했다.

 


 

 

국가 공공시설인 독립기념관에서 여러 차례 강행된 기독교 예배를 비롯한 사유화 논란이 제기됐다.

 


 

 

목사 자격까지 갖춘 김형석 관장은 임기 시작 후부터 기독교에 편향되는 모습을 노출시켜 왔다.

 


 

 

광복 80주년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독립기념관은 기독교의 독립운동을 부각시키는 행사를 개최했다.

 


 

 

기독교 행사 개막일에 '겨레의 집' 앞마당에 1개 대형트리와 80개 소형트리가 동시에 점등됐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 위치는 '겨레의 집'과 '겨레의 탑' 사이의 가장 중심 지역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주요 요인들에 대한 가장 큰 환영 행사는 1945년 12월19일에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 위치)에서 열렸던 것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안내하고 있고, 김형석 관장이 언급한 '1945년 11월28일에 서울 정동예배당에서 조선기독교남부대회가 주최한 임시정부요인 환영대회'에 관한 자료는 국가기록원 등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구 선생(네모칸 가운데)과 김창숙 선생(네모칸 오른쪽)은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유교와 성균관 중흥을 위해 노력한 사이였다(사진 배경은 서울 성균관 명륜당, 네모칸 왼쪽은 정인보 선생).

 

 


 

 

대계 이승희 선생의 '일송오강(日誦五綱)'을 1947년 김구 선생이 써서 심산 김창숙 선생에게 증정했다.

 

 

위천지입심(爲天地立心,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위부모입신(爲父母立身, 부모를 위해 몸을 세우고)

 

위오생입도(爲吾生立道, 내 삶을 위해 도를 세우고)

 

위사민입극(爲斯民立極,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위만세입범(爲萬世立範, 만세를 위해 모범을 세운다)

 

 


 

 

독립기념관은 KBS 방송 등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건립된 '국민을 위한 공공시설'이다.

 

(1982년 10월 경남 함양군에서의 모금 장면)

 


 

 

 

지난 8월15일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개최된 ‘제80주년 광복절 경축 문화행사 겨레의 빛’ 경축식에서 “세계사적 입장에서 보면 연합국의 승리로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었다”라는 문제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본인이 믿는 기독교에 편향된 모습을 반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24년 8월8일부터 제13대 독립기념관장으로서의 3년 임기를 시작한 김형석 관장은 임명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뉴라이트 역사관 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각계각층은 물론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소속된 두 노조인 독립기념관 노동조합(위원장 옥주연)과 공공연구노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지부의 사퇴 요구를 받아왔으나 이를 일축하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직무를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1987년 8월15일 독립기념관 개관 이래 37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해 논란을 일으켰고, 1년 만에 재개된 경축 문화행사에서 마치 외국인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설명하는 듯한 논조의 기념사로 “저런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으로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격한 반응들을 야기했으며, 지난 8월27일 저녁에 방송된 JTBC 「뉴스룸」에서는 김형석 관장이 본인이 아는 이와 관계된 교회 교인들을 초청해 관내에서 기독교 예배를 진행하고, 그들에게 귀중한 유물들이 보관된 수장고를 열어 보여주는 특혜를 베풀었으며, 본인과 동기생들인 ROTC 15기 수료자들을 위한 전국대회를 개최하며 공식 신청이나 대관료 납부 등의 과정도 없이 진행 및 설명 등에 직원들을 동원하는 등 ‘독립기념관을 사유화(私有化)했다’라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eDORXC6SmE)

 

김형석 관장은 임기 초반부터 본인이 오랫동안 믿어온 기독교에 편향된 모습을 종종 노출시켜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는 직원들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첫 번째,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그 의미가 적용되는 해인 2025년이 되기도 전인 지난 2024년 12월20일부터 올해 1월3일까지 ‘한국독립운동과 기독교의 만남’ 행사를 개최하기로 하고, 그에 앞서 2024년 11월29일 오후 2시 밝은누리관 강당에서 KCF(Korea Christmas Festival) 조직위원회(위원장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 주관으로 개최된 ‘크리스마스에 만나는 독립운동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했다.

 

이 자리에서 김형석 관장은 “초기 한국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한성감옥에 갇혔다가 개종한 독립운동가들이었다”라고 설명한 후 1945년 11월 조선기독교남부대회가 주최한 임시정부요인 환영대회를 소개하며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구는 경찰서 열 곳보다 교회 한 곳 세우기를 강조했고, 김규식은 침략받지 않는 강국을 세우려면 국가를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가 한국 근대화에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1945년 11월28일 정동예배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백범 김구 선생은 “새 나라의 건설은 건국(建國)과 건교(建敎)의 2대 방책에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기독교의 어느 목사는 여기의 ‘건교(建敎)’를 ‘건국의 기초는 기독교 신앙을 확립하는 데 있다’고 확대 해석해 전파한 바 있는데 국가기록원을 비롯한 각종 관련 홈페이지 등에서는 1919년 수립된 후 우리나라의 해방을 위해 최일선에서 싸웠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주요 요인들에 대한 가장 큰 환영 행사는 1945년 12월19일에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 위치)에서 열렸던 것으로 안내하고 있다.

 

1945년 11월28일의 기독교 행사에 참석한 김구 선생의 발언 내용은 당시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 겸 민족지도자로 널리 알려졌던 김구 선생이 참석하던 여러 행사 중의 하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주요 인사들은 축사하는 과정에서 참석한 곳과의 인연을 강조하거나 참석자들이 기분 좋아할만한 내용으로 발언하는 경우가 흔하다.

 

두 번째, 지난해 12월 중순에 ‘겨레의 집’ 앞의 ‘겨레의 큰마당’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1개의 대형트리와 80개의 소형트리를 설치했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대단히 특이한 모습이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1980년대 초반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실이 부각되면서 당시 국민학생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의 성금을 모아 시작된 후 예상을 넘는 공사비 부족 사태와 1986년 8월4일 오후 10시경 발생한 화재로 본관 건물이 거의 전소(全燒)되며 10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대폭 개각을 통해 민심 수습을 시도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987년 광복절에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알리고 기념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며 특별한 구설수에 휘말린 경우도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독립기념관 건립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본지 기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과 종교관련 행사’에서 유교 제외」 참조, /coding/news.aspx/1/1/95711)

 

그런데 김형석 관장이 취임한 후 독립기념관은 한국독립운동에 공헌했던 다른 종교들보다 최우선적으로 기독교의 독립운동을 부각시키는 행사인 ‘한국독립운동과 기독교의 만남’ 행사를 개최하기로 하고, 아울러 행사 첫날인 2024년 12월20일에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16인의 기독교인을 상징하는 16미터 높이의 대형 LED 트리 1개와 광복 80주년을 상징하며 80개 교회가 준비한 소형트리 80개를 동시에 불을 켜는 점등식을 진행했다.

 

‘기독교가 한국 근대화에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김형석 관장의 의중이 반영된 듯한 이런 이벤트가 시행되자 독립기념관에 오랫동안 재직했던 직원들부터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그렇지 않아도 임명시부터 여러 논란이 있어 주목받는 데 종교의 자유에 민감한 국민들이 그냥 넘어갈지 우려스럽다”는 걱정과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이 있었으나 관장의 관심사항이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3월21일부터 4월16일까지의 ‘2025 한국독립운동과 천주교’, 4월22일부터 5월18일까지의 ‘2025 한국독립운동과 불교’를 거쳐 지난 8월14일부터 서울 심산김창숙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5 한국독립운동과 유교’ 등 다른 종교의 행사에서는 기독교 행사의 경우처럼 대형 기념물이 제작되어 독립기념관의 중앙에 위치한 ‘겨레의 집’ 앞을 장식할 정도의 과정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세 번째,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로 여러 종교를 두루 섭렵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기독교 이력만을 특히 강조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해 2024년 12월6일에 <기독일보>가 보도한 「‘상해임정 화합’ 손정도·안창호… 교회, 국론 통합에 매진해야」 인터뷰 기사(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41501)에서 “1945년 11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선기독교남부대회 주최로 열린 임시정부 요인 환영대회에서 해방 정국의 ‘3대 영수’였던 김구와 김규식, 이승만은 ‘기독교 건국론’을 강조했다. 이들이 기독교 건국론을 주창했던 배경을 평가한다면?”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김형석 관장은 “이들은 모두 크리스천(Christian,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특징은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당시 공통된 생각은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을 세운 것은 축복받은 사건이라고 가르친 당시의 신앙교육에서 기원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도 당연히 기독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답변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당연히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는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 선생과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전 대통령 외에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을 기독교인이라고 단정하는 <기독일보> 기자와 김형석 관장의 시각과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홈페이지(https://encykorea.aks.ac.kr)는 김구 선생의 「생애 및 활동사항」에서 ‘17세에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등의 내용으로 유교 문화를 어려서부터 접했음을 설명하고, 이후에는 ‘18세에 동학에 입도’ ‘19세에 팔봉접주(八峰接主)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 등의 내용으로 동학, 즉 지금의 천도교에 함께 했으며, ‘이듬해(1898년) 3월 탈옥한 뒤로 삼남 일대를 떠돌다가 공주 마곡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어 원종(圓宗)이란 법명을 받았고’라고 하여 불교에도 귀의하는 시기가 있었고, ‘20대 후반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진남포감리교회(鎭南浦監理敎會) 에프워스청년회(Epworth League) 총무로 일했다’라고 하며 기독교 입교 사실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청년기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등을 통해 굳은 우정을 유지했으며, 1945년 해방 후 전국유림대회 등을 개최해 일제에 의해 경학원(經學院)으로 격하된 성균관(成均館)을 복원하고 유림조직을 재건 및 통합하며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을 도와 성균관 고문, 성균관대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할 정도로 한국 유교와 깊은 관련을 맺었고, 지금도 친필 휘호(揮毫)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가 있을 정도로 유교적 소양이 많았다.

 

이렇듯 김구 선생은 특정 종교 하나에만 매몰되기보다는 격동의 한국 역사 속에서 그 때마다의 시대적 요구와 국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종교들을 두루 섭렵했는데, 마치 김구 선생이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건설을 염원했다’는 듯한 내용을 독립기념관장이 앞장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평화적이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 종교계의 갈등을 만들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