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 옮겨간 쉰들러·현대엘리베이터 20년 악연…경영권 분쟁 끝나도 소송은 남았다 [법정문답]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의 장기 분쟁이 주식시장의 경영권 변수에서 법정의 책임 공방으로 옮겨가고 있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0.01% 미만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영권 압박과 오버행 부담은 크게 약해졌다. 다만 주주대표소송과 소송비용 상환청구 등 국내 법정 다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홀딩아게는 한때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 주주였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바탕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과 장기간 경영권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보유 지분 대부분을 처분하면서 분쟁의 성격도 달라졌다.
최근 조선비즈는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0.01% 미만으로 낮췄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쉰들러가 현재 진행 중인 주주대표소송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지분만 남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쉰들러의 지분 기반 압박은 사실상 약화됐다. 과거처럼 대량 지분을 바탕으로 경영진을 압박하거나 시장에서 오버행 부담을 키우는 국면은 상당 부분 지나간 셈이다.
남은 쟁점은 법원에 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이사진이 과거 물류사업부 양도 등과 관련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 주주대표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주대표소송은 일반 손해배상 소송과 다르다.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 등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구조다. 쉰들러가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쉰들러가 아니라 현대엘리베이터 법인에 귀속된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은 직접적인 투자금 회수보다 경영진 책임을 따지는 성격이 강하다.
소송 유지에는 주주 지위가 중요하다. 상장회사 주주대표소송은 일정한 지분 보유 요건을 충족해야 제기할 수 있다. 일단 적법하게 소송을 제기한 뒤 지분율이 낮아졌다고 해서 곧바로 소송 효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식을 전량 처분해 주주 지위를 완전히 잃을 경우 원고 적격을 둘러싼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쉰들러가 극소량의 지분을 남긴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 참여나 배당 수익보다 기존 소송을 이어가기 위한 법적 지위 확보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투자분쟁에서는 쉰들러의 공세가 힘을 잃었다. 쉰들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 3200억 원대 국제투자분쟁(ISDS) 청구는 전부 기각됐다. 정부는 소송비용 약 96억 원도 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조사·감독 책임을 문제 삼으며 제기한 분쟁이다. 중재판정부가 쉰들러 측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국제중재 차원의 다툼은 한국 정부 측 승소로 정리됐다.
다만 국내 법정의 잔불은 남아 있다. 쉰들러는 과거 주주대표소송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실익을 얻었다며 상법 제405조를 근거로 소송비용 상환청구 소송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이익을 위해 제기된 소송의 비용을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입장에서는 경영권 불확실성과 대량 매도 부담이 줄었다. 쉰들러가 보유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기 때문이다. 다만 주주대표소송과 비용상환 분쟁이 남아 있는 만큼, 과거 경영 판단을 둘러싼 법적 검증은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
현대그룹 내부 지배구조 정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과거 ‘백기사’로 불린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파트너스와의 투자 관계를 정리했다.
파이낸셜뉴스는 27일, H&Q가 현대엘리베이터 관련 투자금 회수를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지난 18일 H&Q가 보유한 잔여 전환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 전량에 대해 2차 콜옵션을 행사하면서다. H&Q는 이를 통해 약 1600억 원을 추가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H&Q의 투자는 2023년 11월 시작됐다. 당시 H&Q는 현대홀딩스컴퍼니와 현대엘리베이터에 약 3100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 구조에는 현대홀딩스컴퍼니 발행 전환사채,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교환사채, 최대주주가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 등이 포함됐다.
이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당시 쉰들러의 소송과 지분 압박으로 현 회장 측 경영권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H&Q는 현 회장의 재무 부담을 낮추고 지배구조 안정화에 힘을 보탠 것으로 평가됐다.
H&Q는 지난해 10월 1차 콜옵션 행사 과정에서 보유 교환사채를 현대엘리베이터 보통주로 전환한 뒤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후 올해 4월 일부 콜옵션 행사가 이어졌고, 지난 18일 잔여 전환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2차 콜옵션이 행사되면서 투자 회수 절차가 사실상 종료됐다.
시장에서는 H&Q의 엑시트를 현대그룹 지배구조 안정화의 한 고비로 본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대부분을 처분한 데 이어 외부 재무적 투자자와의 관계까지 정리되면서 현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 부담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대도 주목된다. 정 전무는 올해 들어 보유 중이던 현대무벡스 주식을 대거 매각한 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정 전무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3.01%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무는 3월 말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248억 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고, 4월과 5월에도 추가 매수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현대홀딩스컴퍼니를 통한 간접 지배력과 별도로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직접 지분도 늘어나게 됐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는 현대홀딩스컴퍼니다. 현대홀딩스컴퍼니는 현 회장이 지배하는 구조이며, 정 전무도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 직접 지분까지 확대하면서 향후 승계 구도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고배당 정책도 지분 확대 흐름과 맞물려 있다. 2025년 결산 기준 보통주 1주당 1만4010원의 배당이 이뤄지면서 정 전무가 현재 보유한 지분만으로도 상당한 배당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이 배당금이 향후 추가 지분 매입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국 현대엘리베이터를 둘러싼 흐름은 두 갈래다. 하나는 쉰들러 지분 축소와 H&Q 투자 회수로 경영권 불확실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 전무의 지분 확대를 통해 현대그룹의 승계 기반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법적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쉰들러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과 소송비용 상환청구 등 국내 법정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약해졌지만, 과거 경영 판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아직 남아 있다.
이번 분쟁은 외국계 주주와 국내 기업의 갈등을 넘어 상장사 지배구조와 주주권 행사의 경계를 묻는 사건이기도 하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책임을 묻고 회사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감시 장치다. 반면 장기 소송이 경영 안정성을 흔드는 수단으로 작용할 경우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현재 흐름을 ‘쉰들러 리스크 해소와 소송 잔불의 병존’으로 본다. 지분 매각으로 경영권 위협은 약해졌지만, 법원 판단에 따라 경영진 책임론이나 비용 부담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현은 자리를 맡은 이에게 먼저 책임을 물었다. 기업 지배구조도 다르지 않다. 경영권 분쟁이 잦아든 뒤에도 과거 경영 판단이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했는지는 법정에서 가려져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현대그룹은 외부 투자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승계 기반을 다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쉰들러와의 장기 소송이 남아 있는 만큼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구조 안정화는 경영권 방어를 넘어 법적 책임 정리까지 이어져야 완결될 수 있다.
지분의 전쟁은 잦아들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법정의 판단과 승계의 질서다. 현대엘리베이터 20년 분쟁의 마지막 장은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책임과 승계의 균형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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