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서원, 익성공(翼成公) 방촌(厖村) 황희(黃喜) 선생 제례 봉행
산양서원(원장 김성규)은 지난 11월25일(음력 10월13일 丁亥) 오전 11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에서 익성공(翼成公) 방촌(厖村) 황희(黃喜) 선생 제향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봉행했다.
추운 날씨에 봉행 된 제례에는 초헌관으로 참석한 삼척시 박상수 시장, 삼척시의회 양희전, 정연철 의원, 산양서원 김성규 원장, 민경남 원임 원장, 민경소 고문, 장수황씨대종회 황의영 부회장, 삼척향교 김상하 전교, 성균관유도회 삼척지부 민경구 회장, 12개 지회장, 원덕읍 관내 각급 기관단체장, 황희 선생 후손 및 지역 유림 등 100여 명이 참례했다.
제례 봉행은 이은일 장의 집례로 분방 낭독에 이어 초헌관이 예찬을 살피는 점시, 향을 피우는 강신례, 초헌관이 첫 술잔을 헌작하는 초헌례, 축문을 낭독하는 독축, 아헌관이 두 번째 술잔을 헌작하는 아헌례, 종헌관이 세 번째 술잔을 헌작하는 종헌례 순으로 봉행됐다.
이어서 내빈 분향을 마치고 음복수조례와 변두를 거두는 철변두, 축문을 불사르는 망예례를 끝으로 모든 예를 마쳤다.
제례 헌관은 ▷초헌관 삼척시 박상수 시장 ▷아헌관 성균관유도회 삼척지부 민경구 회장 ▷종헌관 성균관유도회 삼척지부 원덕지회 김찬수 지회장이 맡아 예를 다했다.
제집사는 ▷집례 이은일 장의 ▷대축 이운재 장의 ▷알자 김승래 장의 ▷봉향·봉로 남명용, 김원조 장의 ▷봉작·전작 이장수, 채순기 장의 ▷사준 유복희 장의 ▷전사관 성균관유도회 삼척지부 미로지회 심진업 회장 ▷묘사 산양서원 민복기 사무국장이 맡아 복무했다.
제례 봉행을 마치고 산양서원 민복기 사무국장의 사회로 내빈소개가 있었으며, 매년 제례 봉행 제비를 지원해 준 삼척시와 삼척향교 관계자에게 감사의뜻을 전했다.
이어서 산양서원 김성규 원장은 인사말에서 “추운 날씨에도 황희 선생 제례 봉행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본 서원은 황희 선생의 청렴과 공덕을 받들어 지역사회 발전에 힘쓰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익성공(翼成公) 방촌(厖村) 황희(黃喜) 선생은 세종 5년(1423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관동지방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자 관아의 곳간을 열어 곡식을 나눠줬다. 이로 인해 삼척 부에는 한 사람도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황희 선생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관찰사가 왕래하며 쉬어가던 와현에 돌을 모아 대를 만들고 소공대라 했다.
중종 10년(1515년) 소공대가 오래돼 무너진 자리에 소공대비가 세워졌으며 순조 24년(1824년)에는 소동사를 짓고 황희의 신위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철종 8년(1857년) 산양서원으로 발전시켜 후학 교육을 했다. 산양서원 건물은 고종 8년(1871년) 서원철폐령이 내려질 때도 남아 있었으나, 1913년 일제 헌병대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묘정비만 남아 있다가, 근래 1998년 묘정비가 지방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고 2001년 서원을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삼척시청 문화공보실, 산양서원 김성규 원장 제공)
제례봉행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초헌관 삼척시 박상수 시장이 헌작을 하고 있다.
대축 삼척향교 이운재 장의가 독축을 하고 있다.
초헌관이 음복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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