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자 제79대 적장손 공수장(孔垂長), 오산 화성궐리사 방문

공수장 적장손이 성묘에서 삼상향하고 있다.

공부자의 위패를 모신 성묘(聖廟)이다.

이용우 도유사(좌)의 안내를 받으며 적장손(가운데)이 궐리사 성전으로 입장하고 있다.

행단 앞에서 공부공씨 문중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기념촬영하고 있다.

참석자들 모습이다.

공수장 적장손(오른쪽 흰옷)이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사당 안에 있는 보호수 은행나무다.

공서린 공적비이다.
공부자 79대 적장손(嫡長孫) 공수장(孔垂長, ,쿵추이창) 대성지성선사 봉사관이 9월14일 오전 10시 경기 오산시 매홀로 3 오산 화성궐리사(도유사 이용우)를 처음 방문했다.
그를 환영하기 위해 공씨 문중 일가, 유림, 시민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 적장자는 참석자와 대화, 분향례 봉행, 기념 촬영, 기념식수, 성상전(聖像殿) 오성위 석상 배례, 양현당에서의 성적도 관람, 인성학당에서의 좌담회를 가졌고, 안내는 공병무 사무처장이 맡았다.
이용우 도유사의 안내를 받아 외삼문으로 입장해 환영 나온 공자 후손들과 향단(㕿壇) 앞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장손은 "환영 나오신 여러분에게 먼저 감사드린다. 대만에서도 한국 유교와 교류에 많은 관심이 있다. 몇년 전 이곳 궐리사 방문 계획이 있었으나 코로나 유행으로 방문이 중단되었고, 이제서야 방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상호교류에 많은 노력을 하겠다"라고 인사했다.
분향례의 집례는 윤의영 유림, 알자는 공찬식 유도회장, 우집사는 이근화 유림, 좌집사는 이우철 유림, 봉향은 공병권 유림, 봉로는 김건억 유림, 관세는 양현길 유림이 맡았다.
지난 1975년 7월 1일 타이베이에서 공자의 78대손이였던 쿵웨이이(1939~1989) 선생의 아들로 태어난 공 봉사관은 본래 중국 취푸시에서 나고 자랐던 공자의 후손들이 국부천대 과정에서 대만으로 망명함으로써 대륙 밖에서 출생한 최초의 직계후손이다. 아버지가 5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이른 나이부터 할아버지 쿵더청 선생의 후계자 역할을 해왔고, 2009년 11월 마잉주 정권 당시 최연소 총통국책고문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2008년 쿵더청 선생이 사망하자 그의 직책을 이어받아 2대 봉사관으로 취임했다.
오산 화성궐리사는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 선생이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다. 정조 임금이 1792년(정조 16) 이곳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궐리사(闕里祠)라는 현판을 하사했는데 공자의 후손들이 조선으로 이주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곳으로,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동성 곡부현의 궐리(闕里)란 지명을 내린 것이다.
현재 궐리사에는 외삼문에 궐리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앞에 하마비가 있다. 경내에는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성묘(聖廟)가 있고, 성적도(聖跡圖)를 모신 장각(藏閣)이 있다. 그 외 행단, 양현재, 인성학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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