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와 보성군이 따로, 다르게 기리는 ‘낙안 3·1운동'
1908년 낙안군 폐군의 역사적 상처 극복 방안 찾아야
일제의 폭압에 맞서 온 겨레가 떨쳐 일어났던 3·1만세 운동. 박은식이 지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순천에서 1919년 5월31일 현재 집회 6회, 참여자 1,500명, 사망자 8명, 부상자 32명이라 했다.
이 가운데 순천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4월7일 하루였지만, 낙안 사람들은 3차례나 크게 시위를 벌였고,18명이 실형을 받았다. 순천에서 서훈받은 65명의 애국지사 중 낙안 출신 3.1운동 관련자가 25명이나 된다.
보성군에서는 1919년 여러 항일 움직임이 있었으며 체포 구금을 당한 분도 있지만, 옥살이를 하여 서훈을 받은 애국지사는 없다. 1908년 낙안군은 사라졌지만, 낙안면 애국지사들이 벌교에 진출하여 2차례나 큰 시위를 벌였기에 보성군에서도 낙안 사람들이 벌인 벌교의 3·1운동을 중시하고 있다.
순천시의 삼일절 기념식은 ‘낙안3·1운동기념공원’에서 열렸다. 오전 9시 유족회 제향과 참배가 있은 후에 낙안민속농악단의 풍물 공연, (사)낙안읍성판소리보존회의 추모 무용이 식전 행사로 진행됐다.
내빈 소개 때는 김문수 국회의원, 순천시와 낙안면의 기관장,보훈지청장과 관련 단체부터 조합장 등이 소개됐다.
오전 10시 개식 후 유족회장과 낙안중 학생, 낙안 주민 등 3명이 쉬운 말로 풀어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노관규 시장을 대신해 정광현 부시장이 기념사를 했다.
정 부시장은 준비한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연대와 책임의 가치를 다짐하자”고 했지만 지역 3·1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3·1절 노래 제창과 만세삼창으로 기념식은 끝이 났다.
이어 기념공원의 만세 동상 옆에서는 (사)낙안읍성판소리보존회가 “그날의 함성 재현” 연극을 공연했다. 낙안에 독립선언서를 갖고 들어온 안호형 지사가 만세 시위 참여를 호소하고, 주민들이 동조해 참여하고 일제의 헌병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를 탄압하며 애국지사를 연행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꾸몄다.
이어 읍성 중앙까지 거리행진을 하여 행사를 마쳤다. 참가자 일부는 읍성 안 난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최측에서는 참가자들에게 A5 4쪽에 기념식순 · 낙안3·1운동 애국지사 명단(28명)과 삼일절 노래를 담은 복사물, 손으로 흔들 수 있는 작은 태극기와 머리에 쓸 수 태극기 머리띠를 나눴다.
보성군의 3·1절 기념행사는 벌교읍 장좌리 마을회관 앞 '어울마당'에서 열렸다. 가까이는 장좌기받이 당산이 있고, 멀리 제석산이 보이는 광장앞에 철제 배경막을 세우고, ‘그날의 함성, 그날의 정신’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장좌마을 3·1만세운동 107주년 기념식’ 글씨를 넣었다.
내빈 소개에 이어 경과보고,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은 후 강규종 3·1만세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의 기념사가 있었다.
강 회장은 “19년 전 군의원을 할 때 『낙안향교지』에 있는 내용을 토대로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일정을 조정해 참석한 김철우 보성군수는 축사에서 “서슬 푸르렀던 당시 대한독립을 요구했던 자리가 이 자리였음을 알고 보성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자랑스럽다.”며 장좌리 주민들을 격려했다.
일찍이 『벌교읍지』를 펴냈으며, 이번 행사에 협력한 김길두 벌교읍민회장은 축사를 하면서 현역 군의원과 군의원 예비후보들에게 오늘의 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어 삼일절 노래를 제창하고 만세 삼창,사진 촬영으로 기념식을 마쳤다. 주최측은 일반 참석자들에게 태극기가 많이 들어간 스카프와 타올,간식 봉지, 축사와 경과 보고·장좌리 항일독립만세운동·지난해 기념식 사진 등이 들어간 A4크기 12쪽 소책자를 나눠줬다. 예전에 있었던 선근공원의 재현극이나 거리행진은 없었다.
비록 대대적인 시위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1919년 3월2일 밤을 이용해 순천 곳곳에 독립선언서를 용기있게 붙였던 6명의 애국지사는 천도교인이었다.
3·1독립선언서에 함께 하지 못했던 유림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을 했던 것이 ‘파리 장서 운동’이었는데, 서명자 137명 가운데 낙안 유림 3명도 있었다(홍영기)고 하나 유교신문(2024.04.16.)에 실린 명단에는 없다.
서울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온 안호형은 이들을 포함한 8명으로 위친계로 위장한 비밀결사 ‘도란사’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33명으로 행동대인 이팔사를 조직했다. 이들이 세 차례에 걸쳐 낙안의 3·1운동을 주도하였는데, 대부분 유림이었다. 이러함에도 순천의 삼일절 기념식에는 지역의 유림들을 이끌고 있는 순천향교에 초대장도 보내지 않았다. 내빈 소개에 빠져 있어 향교에 확인하니 “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순천의 기념식 현장에서 배부한 순서지 3쪽에 ‘낙안 3·1운동 애국지사 명단 28명’이 있었다.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 사이트 내용과 대조했더니 본명이 아니라 딴이름(異名)을 써서 혼동하게 하거나(안은수,오영태,신용석,한철순), 아직은 서훈 받지 않은 이를 넣거나(김만득,안담환), 상사 출신의 이름을 넣어 낙안 출신으로 착각하게도(박항래) 했다.
‘이팔사’라는 이름 때문에 28명의 조직으로 생각한 모양이나, 이팔사는 2·8독립선언에서 유래됐으며(『낙안향교지』) 그 규모는 33명(『낙안향교지』·『벌교100년』)~35명(『독립운동사』제3권)이었다고 책자에 나온다. 벌교의 기념식 현장에서 나눠준 소책자에는 4월13일의 낙안읍성 만세 시위는 벌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빼놓고 있었다.
순천시 삼일절 기념식이 낙안3.1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보성군의 3.1절 기념행사가 벌교읍 장좌리 마을회관 앞 '어울마당'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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