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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독자기고 :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한옥 고택의 사당, 충헌사

편집부
2014.10.29·3분 읽기·조회 25

 

충현사에서 추기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충헌사(대표 정필복)는 지난 10월13일 논산시 유림과 청주 양씨 종친 등 8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추기향사를 거행했다. 특히 향사 봉향을 위해 양씨 문중에서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했다.

 

이날 초헌관은 임일수 전 노성햑교 전교, 아헌관은 국봉중 전 연산향교 전교, 종헌관은 양철우 교학사 사장, 집례에 양철야 노성권리사 제장, 대축은 도사희 연산향교 장의, 분축에 양승돈 유림, 양명석 유림, 직일은 박도욱 유림이 맡았다.

 

충남유형문화재 제194호인 충헌사는 충헌공 양기 선생을 주벽으로 퇴은 양치, 대봉 양희지, 도곡 양응춘, 어촌 양훤을 배향한 사당으로 양기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인조 4년(1626)에 건립됐다.

 

주벽 충헌공 양기는 고려 제26대 충선왕 때 공민왕비가 된 노국공주를 수행하여 우리나라에 왔다가 당시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을 보고 돌아가 고려의 조공제도를 폐지하도록 노력했다. 후일 고려에 귀화하여 상당백의 작위를 받고 청주 양씨의 시조가 됐다. 퇴은 양치는 함길도와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고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김종서 장군이 6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운 충절의 무관이다. 계유정란 후 산속에 숨어 은둔생활을 했다.

 

양희지는 양기의 8대손으로 호가 대봉이며 연산조 때 직제학, 충청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고 저서로 대봉집이 있다. 도곡 양응춘은 양기의 13대손으로 회덕현감 재임 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이어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조참의에 추증됐다. 양훤은 양기의 14세손으로 호는 어촌(漁村)이다. 병자호란 때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에서 활약했으나 인조가 청에 항복하자 낙향하여 광산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다.

 

충헌사는 일반 서원이나 사와 구조가 다르다. 일반적인 사의 건물구조는 독립성인데 반해 충헌사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한옥 고택 내의 사당이다. 때문에 사당에 들어가려면 고택의 대문을 통해야 한다. 충헌사는 고택의 사랑채로 강당으로 사용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경모당, 경모당 뒤로 경례문 현판이 걸려 있는 내삼문, 정면 3칸 측면 1칸의 충헌사 현판의 사우로 이루어져 있다. 

 

연산 이덕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