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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특별기고: 아버지의 애환

편집부
2015.02.05·4분 읽기·조회 13

지금은 농촌이라 해도 농업기계화로 농사일이 고되고 힘드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지난 60년대만 해도 가축을 이용해서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는데 이용했다.

당시 가족은 보통 7,8명이었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아버지는 고된 농사일을 해서 자식공부 시키느라 등골이 휘어지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었다. 모내기 할 때는 별을 보고 일어나서 별을 볼 때까지 일을 해야 하고, 농한기 때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손이 갈라지도록 가마니를 짜고 먼 산에 가서 자식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 땔감을 해오고 어깨가 아파와도 꾹 참으면서 일해 왔다. 그리고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서 곡식을 시장에 내다 팔고 하여 푼푼이 모아 학비에 보태 쓰고 그나마 조금 형편이 좋은 집은 소를 길러 팔아 등록금으로 쓰곤 했다.

가장인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참아가면서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는 천륜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는데 자식은 성인이 되고 결혼하면 아버지에 대해 보살핌이 소홀해진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대학에 보내놓고 나면 훗날에 아이들이 잘나서 대학에 가고 졸업 후 직장을 구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세월이 바뀌면서 아버지의 역할도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주야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식을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잘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자신의 청춘을 다 바치고 있지만 과거 60년대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자나 깨나 늘 자식을 향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 자식이 반이나 알 수 있겠는가.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집에 오는데 아이들 데리고 불편하다며 어른이 서울로 올라가는 소위 역귀성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시대가 변하여 핵가족화되면서 가장인 아버지의 위상이 많이 달라져서 가족이 해체되는 일이 가끔 일어나고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가 있기에 사회가 발전하고 도덕과 예절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한 번쯤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소학에 이르기를 '부생아신하고 모국아신이니 은고여천이라' 하였다. 즉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그 은혜는 하늘과 같이 높다는 뜻이다. 부모들의 끝없는 자식사랑을 한 번 정도 깊이 생각해 보자. 세월이 변하고 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지기 전에 효도 한 번 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나무가 가만있고자 하나 바람이 불고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자식들은 마음에 새겨주기를 바란다.

끝으로 조선시대 문인 정철이 지은 한시 한 수를 음미해 보고 효행의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겨보기 바란다.

어버이 살아 신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달프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한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경주 김영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