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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양주향교, 해유령전첩 숭모제향 봉행 행사 개최

이욱균 기자
2020.05.24·3분 읽기·조회 9

양주향교(전교 이을규)는 지난 5월19일 오전 11시 양주시 백석읍 소재 충현사 해유령전첩지 현장에서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승리를 거둔 해유령전첩의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고 이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원수 신각 장군, 이양원 유도대장, 이혼 함경병사 삼위 호국선열의 충혼을 기리며 민족정기선양을 위한 교훈으로 승화시키고자 해유령전첩 숭모제향 봉행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조학수 양주시 부시장, 홍성준 양주시문화원장, 김원태 양주향교 부전교, 김재만 동두천시 유도회지부장, 김영규 양주시 유도회지부장, 함영호 남양주시 유도회지부장, 박용욱, 백승우, 정호택, 김경선, 김재훈 원로, 장의, 유림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양주향교가 주관한 이날 행사의 초헌관은 조학수 양주시부시장, 아헌관은 이길로 전주이씨대표, 종헌관은 홍성준 양주시문화원장, 집례는 임병기 양주향교 의전수석장의가 맡았다.

 

이을규 양주향교 전교는 인사말에서 “조학수 양주시 부시장을 초헌관으로 모시고 제향을 봉행하게 됐다. 후손 여러분과 오늘 행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호국선열의 충혼을 기리는 이 행사를 통해 그 충심과 고귀함을 되새기고 본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유령전첩 : 선조 25년 5월 수도 서울이 함락된 후 해유령은 우리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서 적과 싸워 적을 퇴각시키고 적병 칠십여 명의 목을 베었지만 조정은 선전관을 보내 군중에서 신각을 참수했다. 처음에 신각은 부원수로서 도원수인 김명원을 따랐지만 한강에서 아군이 궤멸되었을 때 신각은 도원수인 김명원을 따르지 않고 유도대장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갔다. 그때 마침 함경남도병사 이혼의 부대가 이르렀기에 신각은 부대를 합쳤다. 한양에서 나와 임진강으로 가는 길목에 매복하고 왜군을 기다리다 이를 무찔렀으니 왜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아군이 거둔 첫 승리였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도원수 김명원은 임진강에 있으면서 신각이 멋대로 다른 곳으로 떠났으며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올리니 우의정 유홍은 신각을 급히 베어 죽일 것을 청했다. 그리하여 형을 집행할 선전관이 떠난 뒤에 신각의 승전보가 이르니 조정은 사람을 보내 형의 집행을 멈추게 하려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죄 없이 죽었고 더욱이 아흔 살의 늙은 어머니까지 계셨으니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모두 애통해 했다. 장군의 부인 정씨는 남편의 장례를 마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