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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특별기고] 하남시, 3기 신도시 교산지구-살기좋은 교육의 도시를 준비해야 한다

제3기 신도시 교산지구 중심에는 유서 깊은 하남 광주향교가 있다<br>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3번째는 교산이다<br>선비정신을 담아내는 교육도시여야 한다

김일권 기자
2020.09.13·8분 읽기·조회 11

 

교산지구 조감도

 


 

3기 신도시 교산지구 중심에 있는 하남 광주향교는 이번 사업에서 존치·보존하기로 결정됐다. 다행스럽다. 

 

하남 광주향교 앞에는 커다란 아름드리 은행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향교의 수호목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다섯 그루의 은행나무는 서울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와 전라도 정읍에 있는 고부향교 앞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은행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하남 광주향교를 말할 때마다 유서 깊은 하남 광주향교라고들 이야기한다.  

 

1900년대 초반까지도 하남 광주향교 주위로 은행나무와 함께 회화나무, 소나무, 쉬나무가 울창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선비나무라고 부르며 선비들이 집안에 심거나 과거시험에 합격했을 때 심었다. 광주향교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 3714명 중 10%에 육박하는 345명을 배출했으니 얼마나 많은 회화나무를 심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나무는 푸르른 솔잎처럼 추운 계절(季節)에도 잎이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역경(逆境)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의미하며, 학자수(學者樹), 세한송(歲寒松)이라고 했다.

 

쉬나무는 꽃이 지고 나면 까만 열매를 맺는데 그 종자로 기름을 짜서 옛날 선비들이 공부할 때 불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에 의해 뽑혀지고 베어져 지금은 은행나무 몇 그루만 볼 수 있다. 현재 유림들과 하남시의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노력으로 주변 가로수와 함께 보호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광주향교 행단(은행나무)

 


 

 

 

공자는 최초의 교육자였으며 유교 아카데미를 설립한 성인이다. 그가 제자들을 가리키던 곳을 행단(杏亶)이라고 하는데, 은행나무 아래에 단을 만들고 제자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행단(은행나무)이라는 말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들리는 말로는 은행나무의 열매인 은행은 광주향교의 귀중한 수입원 중 하나였으며 하남 광주향교와 지역 유림들은 은행나무라 부르기보단 행단이라 했다. 

 

행단은 지난 천 년 동안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 외에 3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 

 

첫째, 관청이나 향교 앞에 있는 행단(은행나무 그늘 아래)에서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면 향교의 권위로 행단에 의미로 보호받았으며 글을 알고 있는 선비들은 변호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둘째, 많은 국민들이 글 모르는 시대. 관청의 공문서, 그리운 가족에게서 온 편지를, 행단 아래 들고 있으면 선비들이 읽어주었다고 한다. 이렇듯 행단은 국민들이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통로에 역할을 했으며 지역 현안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다.

 

 

셋째, 학문과 사상을 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대였다. TV 드라마 사극을 보면 많은 선비들이 꿇어앉아 ‘마마 아니 되옵니다’ 하는 모습(연기)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가정책을 스스럼없이 반대할 수 있으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들리는 말로는 그 성향이 강해 실학이 번성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고도 한다.

 

현재 행단은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하남 광주향교는 행단(은행나무) 아래 대청마루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 어린이, 독서에 심취한 청년, 나라를 위해 힘찬 토론을 이어가는 장년, 손주에게 지난날의 경험을 들려주는 노년의 모습을 행단과 함께 그리고 있다.

 

3기 신도시 교산지구는 하남 광주향교의 선비정신과 행단에 의미를 되새겨 교육의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광주향교 전경

 


 

하남 광주향교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 5년에 전국 각 목(8목)에 개교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남시는 고려 때도, 조선시대에도 목(큰 도시에 두었던 지방 행정 단위)이었으며 그밖에 여러 문헌과 자료로 보아 광주향교는 최소 600년, 1000년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홍살문(향교, 능, 충신 등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진다)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중요한 기록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불타버리고 남아있던 자료마저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난도질당하고 유실돼 고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고증자료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남 광주향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평지에 지어져 건물의 아름다움과 공원과의 조화로움이 겹쳐져 전국 유림들의 부러움과 탐방객의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다. 

 

고려·조선시대 국립 중·고등학교인 하남 광주향교가 정원이 90명 정도이고 하남시(광주, 성남, 의왕, 강남, 강동, 송파, 양평군 조안면 (서초구, 용인, 안산, 군포, 수원 일부))가 광역시 정도의 크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하남 광주향교 정도로 표현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도 대학교 앞이 땅값도 비싸고 최고 번화가라고 한다. 향교가 대학교는 아니지만 지역에서는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것을 감안하고 근처에 공공기관마저 포진해 있었다면 그 당시에 하남 광주향교가 위치한 3기 신도시 교산지구는 요즘으로 말하면 강남이나 홍대 앞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교육의 도시, 하남시는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해야 한다. 

 

하남 광주향교는 근처에 있다가 관청이 남한산성으로 이사가며 1723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풍수는 명당이나 집터 또는 마을의 입지를 정할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공간을 가리킨다. 요즘은 풍수가 과학의 영역으로 인정받아 집을 지을 때, 도시를 건설할 때 위치 나 방향, 물길, 바람길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3번째는 왜 교산지구이고 교육의 도시 선비의 풍모로 발전시켜야 하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교산지구처럼 좋은 자리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남한산성과 광주향교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맥을 끊고 용의 머리를 자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2018년 하남시 광주향교 추계석전

 


 

 

하남 광주향교는 하남의 역사 문화 창달을 위한 교두보였다. 가슴 아프게도 1910년 무력(武力)으로 한국을 합병(合倂) 한 일제는 우리의 국가이념을 부정하고 민족성을 말살(抹殺)하기 위하여 합병 직후 성균관을 폐지하고 하남 광주향교 역시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이 같은 강압정책(强壓政策)에 따라 성균관은 국립대학으로서 면모(面貌)를 잃고 경전을 교육하는 사설 전문학원으로 전락(轉落)하였으며, 하남 광주향교 역시 문묘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이 허용되었다.  

 

현재 하남 광주향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인성교육 현장 교실’ 및 각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예절교육, 유교 아카데미 강좌, 명사초빙 유학강좌 등을 개설하는 등 사회교화(社會敎化) 및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본래의 기능과 모습을 점차 되찾아가고 있다.  

 

하남 광주향교에 가면 ‘부모님께 잘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아내를 공경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자식에게는 엄하게 하지 말고 친근하게 대하며 선후배에게 잘하고 친구 간에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라고 항상 말씀들 하신다. 

 

하남 광주향교 주변을 복원해 하남의 정신을 아로새겨야 한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비정신을 살릴 수 있는 배움터로 만들어야 한다. 행단에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학문 연구의 산실로 만들어야 한다. 하남시민이라면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평생교육교실로 만들어야 한다. 

 

공자 말씀 중 '온고지신(溫故知新)'(『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온 말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발전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 더 편하게 하는 것이 발전이다. 옛 것을 익혀야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 

 

하남 광주향교는 천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은퇴 후 다시 하남 광주향교에 돌아와 내 것을 알려주고 새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후학을 양성하여야만 진정한 정년을 인정해, 지역에서는 원임 전교, 장의로 예우하고 공경하며 본인 또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선열들의 진취력과 마음가짐 그리고 세상의 지혜를 가까운 하남 광주향교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