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중심 터“ 삼척도호부 관아지” 사적 지정 예고
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져온 삼척의 중심 터<br>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 수렴 후<br>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적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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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1745~1806)의 죽서루(『금강사군첩』(18세기 말), 개인소장)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0월29일 강원도 삼척시에 자리한 『삼척도호부 관아지(三陟 都護府 官衙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
『삼척도호부 관아지』는 삼척이 태조 2년(1393년)년 삼척부로 승격되고 태종 13년(1413년) 삼척도호부로 지명이 변경된 후 고종 32년(1895년) 삼척군으로 개명될 때까지 삼척의 행정 명칭으로 사용된 조선시대 삼척지역 통치의 중심지였던 삼척도호부 관아*가 있던 터이다.
※1757년(영조 33년)~1765년(영조 41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삼척도호부 공해조(公廨條)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객사(客舍) 50칸 아사(衙舍) 91칸, 향청(鄕廳) 10칸, 훈련청(訓練廳) 6칸, 군기고(軍器庫) 20칸 등이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고 유유히 굽어 흐르는 오십천과 함께 죽서루*만 전해 왔는데, 2010~2016년까지 총 4차에 발굴조사 결과 객사, 동헌, 내아의 중요건물 유적과 삼척 읍성의 남문지와 체성부가 확인되는 발굴 성과와 더불어 많은 고문헌 기록(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죽서루 그림 등)을 통해 삼척도호부의 실체가 분명하게 밝혀짐으로써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됐다.
※ 삼척 죽서루(보물 제213호/1963년 지정)
※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명승 제28호/2007년 지정)
또한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신라와 고려시대 유적과 유물*도 함께 확인됐는데 이러한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삼척도호부 관아지』와 그 일대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삼척 지역의 정치, 문화의 역할을 해온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신라·통일신라 시대(5~8세기) : 수혈주거지, 투창, 고배편, 각종 토기 등
※ 고려시대 : 토성, 각종 기와류와 도자기류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삼척시 관계자는 “현재 삼척도호부의 객사를 복원 중에 있으며 삼척도호부 관아지 사적 지정으로 국비 지원을 통해 체계적인 학술 연구‧복원 정비 및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사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재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삼척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이는데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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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경 죽서루와 객사, 내삼문(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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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도호부 객사-조선총독부 유리건판 사진(1915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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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도호부 객사 모습(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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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도호부 주변지역 모습(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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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도호부 주변지역 모습(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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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1936년 1월 3일자 동아일보)

1959년 지적도 상의 삼척도호부 관아유적과 삼척읍성
삼척도호부관아유적전경(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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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도호부관아유적전경(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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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현재 모습 사진(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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