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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화성궐리사 정월보름 분향례 봉행

김용헌
2017.02.12·2분 읽기·조회 12

 

성묘에서 유림들이 배례하고 있다.

 


 

 

유관진 도유사가 분향하고 있다.

 


 

 

성상전에서 유림들이 읍례하고 있다.

 


 

화성궐리사(도유사 유관진)는 2월11일 오전 10시 정월대보름을 맞아 성묘(聖廟)에서 20여 명의 유림이 참석한 가운데 정월보름 분향례를 봉행했다.

 

분향례 참배 유림들은 사무실에서 도포로 갈아 입고 대성지성문선왕 위패를 모신 성묘에 입정해 유관진 도유사가 성묘 안에서 분향하고 일반 참사자는 성전 밖에서 4배를 했다.

 

분향을 마친 후 참사자들은 공자상을 모신 성상전(聖像殿)으로 자리를 옮겨 분향 후 읍례로 4배를 했다.

 


 

궐리사 외삼문. 그 뒤에 내삼문과 성묘(聖廟)가 있다.

 


 

대성지성문선왕 공부자의 위패를 모신 성묘(聖廟)

 


 

 

중국 곡부시로부터 기증받은 공부자 석상

 


 

문헌공 공서린 유허비와 수령 400년된 은행나무

 


 

화성궐리사(華城闕里祠)는 경기도 오산시 궐동에 있는 공자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논산 노성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개 궐리사 중 하나이다.

 

이곳은 본래 경기도와 황해도 감사, 대사헌을 역임한 공자의 후손  문헌공 공서린(孔瑞麟, 1483-1541)이 낙향해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그 후 폐허가 되었으나 정조가 1792년 수원화성을 건설할 때 이곳은 공자의 후예가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궐리사(闕里祠)란 사우(祠宇)도 있고 은행나무도 심어져 있으며 대대로 눌러사는 후손들도 있었다면서 궐리사를 재건하도록 했다.

 

지명도 화성부 중규면 구정촌이었으나 공자께서 생거했던 중국 궐리를 따서 궐리로 개칭하라 했고, 화성궐리사 사액을 내렸다. 아쉽게도 고종 8년(1871년)에 훼철됐다.

 

1894년 성묘 유허에 설단을 설치했다. 1946년 강당을 개축했다. 1993년 공자석상을 중국 곡부시로부터 헌납받고,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궐리사 성역화사업을 전개해 성상전, 공자문화전시관, 양현재, 내외삼문 등을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