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향교, 관동창의장 휘남 김헌경 옹 불망비 제막
재장 김헌경 옹 후손대표 김동기 손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재장 김헌경 옹 불망비 제막을 하고 있다.
재장 김헌경 옹 불망비에 대해 정수철 국장이 설명하고 있다.
재장 김헌경 옹 불망비 제막식을 마치고 유족 및 후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장 김헌경 옹 불망비
삼척향교(전교 최승교)는 지난 11월4일 오전 11시 30분 삼척향교 명륜당 앞에서 정수철 사무국장의 사회로 원로 유림 및 종친 가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동창의장 휘남 김헌경 옹 불망비 제막식 행사를 가졌다.
관동창의장 휘남 김헌경 옹의 호(號)는 휘남(輝南), 본관(本官)은 강릉(江陵)이며 1851년 11월30일 강원도 동해시 봉정마을에서 태어났다.
김헌경 옹은 1894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삼척 유림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의병을 조직해 전국적으로 궐기함과 동시에 삼척 의병은 창의장 김헌경, 참모장 김태호, 선봉장 주명승을 필두로 궐기했다.
1896년 5월30일 새벽, 친위대는 삼척성에 주둔한 의병을 공격했다. 이에 관동창의대장 민용호는 선봉장 김수현, 수성장 민동식으로 하여금 성내리에 매복하게 하고 삼척창의장 김헌경에게는 삼척의병을 이끌고 죽서루에 집결 진을 치게 하고, 자신은 중군 최중봉 김치운 등을 이끌고 갈야산에 매복했다.
김홍권이 이끄는 경군(京軍)이 거만하게 삼척성에 입성하자 의군이 삼면에서 공격하여 시가전은 저녁 5시까지 전투가 계속됐다. 패배한 경군은 380명 가운데 겨우 50여 명이 강릉 방면으로 도망쳤다. 이 삼척전투에 서 삼척의병 통진장 이건필이 용감하게 싸워 경군 10여 명을 사살하고 장열하게 전사했다. 이 전투를 겪은 삼척의병은 울진으로 퇴진했다.
이 때 일제와 친일내각의 위협으로 고종황제는 의병해산칙령을 내렸다. 전국 의병은 눈물을 삼키며 고종황제의 칙령(勅令)을 거역할 수 없어 의병해산의 비운을 맞았다. 그 일로 관동의병은 해산되고 말았다.
그 후 일제의 관헌에 의해 김헌경 옹의 가옥은 불타고 가족은 의진 종사관으로 있었던 김병길의 승지동 가옥으로 피신하는 고초를 겪었다. 김헌경 옹은 체포돼 한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에 시달리던 중 1910년 5월5일 순국(殉國)했다. 삼척향교에서 시신을 운구해 장례를 치렀다.
김헌경 옹은 2006년 9월23일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국가로부터 1977년 12월13일 건국포장 제737호, 1990년 12월26일 건국훈장 애국장 제265호, 1993년 6월1일 국가유공자 증 제17-15호 등의 훈·포장을 받았다.
삼척향교 최승교 전교는 제막식에서 "재장 김헌경 옹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덕을 후세에 길이 보전하기 위해 삼척향교 교정에 유림의 뜻을 담아 자그마한 비를 세우게 됐다. 재장 김헌경 옹의 애국정신을 본 받자"고 말했다.
유족대표로 참석한 재장 김헌경 옹의 손자 김동기 후손은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불망비를 세워준 삼척향교 최승교 전교와 원로 유림, 향교 유림 관계자 분께 감사하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직계 손자 김동기, 고손자 김홍래 후손과 김한기, 김창남, 김영래 종친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망비 제막식을 했다.



![무신사,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카드뉴스 논란 확산 [유교경영리포트]](/uploads/4/legacy/photos/20260521/art_17791935224319_134c6c.jpg)

![[단독] 구리시장 경선판 흔드는 ‘유령 여론조사’... 언론사 명의 빌린 ‘불법 대리 조사’ 의혹 포착](/uploads/4/legacy/photos/editor/2604/20260417081433_gxgnwrel.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