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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삼척향교 '인문학반 1일 역사문화' 현장 탐방으로 종강

전남표 기자
2017.11.16·3분 읽기·조회 7

삼척향교 교생이 남한산성행궁 한남루 앞에서 종강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척향교(전교 최승교)는 삼척시가 지원하고 삼척향교가 주관하는 '살아 숨쉬는 향교·서원 만들기 사업'인 인문학 강좌를 역사문화 현장탐방으로 마무리했다.

삼척향교가 주관하는 '향교·서원 만들기' 교육사업 일환으로 지난11월15일 인문학 수강생 30명과 최승교 전교, 김익수 성균관유도회 삼척지부회장은 '남한산성(사적 제57호)'과 '남한산성행궁(사적 제480호)' 등 역사문화 유적지를 현장 탐방했다.

탐방단은 오전 8시 향교에 도착해 최승교 전교의 인사말과 정수철 사무국장의 안전사항을 듣고 정수철 국장의 안내로 출발했다.

첫 탐방지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소재한 사적 제480호인 남한산성행궁에 도착해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외행전, 통일신라 건물지, 내행전 등의 10여동 건물과 터전을 둘러봤다.

행궁은 임금이 서울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행궁은 전쟁, 내란 등 유사시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4년(1626)에 건립됐다.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임금은 이곳에 피신해 47일간 싸웠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임금도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이용했다.

남한산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두 번째 현장 탐방은 남한산성의 동, 서, 남, 북 4개의 문 가운데 북문을 둘러봤다.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300여 명의 우리 병사가 청나라 군과 싸우다 전멸한 곳이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며 정조3년(1779)에 성곽 개보수를 마치고 그때 패전을 잊지 말자고 ‘전승문(全勝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최승교 전교와 김익수 회장은 2017년도 인문학 교육을 마무리하면서 "먼저 좋은 강의를 해 주신 여러 강사께 감사드린다. 또 수강생 여러분의 관심과 열정 덕분에 교육을 무사히 마침을 기쁘게 생각한다. 내년에도 삼척향교에서 실시하는 모든 교육사업에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 그 동안 교육사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수고한 정수철 국장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인사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