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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독립유공자 연암 송훈익​ 의사 공적비 제막식 거행

윤홍석 기자
2024.04.02·4분 읽기·조회 64

 

독립유공자 연암 송훈익 의사 공적비 제막을 봉행하고 있다.

 

 

 


 

 


 

공적비 제막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남계 송정택 이사장이 비문을 송독하고 있다.

 

 


 

 

연암 송훈익 선생 공적비문을 송길선(공의 5남)에게 전하고 있다.

 

 

 

 


 

 

제막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3월31일 성주군 초전면 동산리 산 874번지에서 독립운동가 의사 연암 송훈익(義士蓮菴宋勳翼)의 공적비 제막식이 후손들의 주도와 광복회 간부 및 영남유림의 공의로 일가친척 2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됐다.

 

제막 행사에 앞서 종친을 중심으로 연암 송훈익 선생의 묘소에 공적비 제막을 알리는 고유제를 봉행하고 이어 제막식 행사에서는 송종호 경북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개회선언, 국민의례, 내빈소개, 제막에 이어 기념사진 촬영, 비문낭독, 감사 인사말과 내빈축사, 축전, 축시 낭독, 폐회 선언 순으로 성료됐다.

 

이날 행사에는 노수문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배현탁 성주향교 전교, 윤홍석 현풍향교 전교, 송정택 사단법인 비움서예포럼 이사장, 배재관 성주유도회 회장, 이명식 대구대 명예교수, 송만수 야성송씨 충숙공 종손, 김상화 현풍향교 원님전교, 이난희 성주군 복지과장, 고강희 초전면장을 비롯하여 송준철 단구공파 주손, 송우익 재구종친회회장, 송건회 사직공파 회장, 송철재 선략공파 회장, 송용섭 감사공종회 회장, 송수익 인의공파 회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공적비문을 찬(撰)하고 병서(並書)한 남계 송정택 비움서예포럼 이사장은 연암 송훈익 선생의 비문을 낭독하고 그 원본을 5남(막내아들) 송길선 씨가 전달받았다. 이어 송길선 씨는 감사인사로 “백세각에서 문회를 열어 사생결단으로 천명을 다한 선고의 공적이 광복회 대구지부와 영남 유림의 공의로 선영에 공적비가 우뚝 세워지니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감사한다”고 했다.

 

노수문 광복회 대구광역시지부장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목숨을 내놓고 싸운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정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이명식 대구대 명예교수는 “연암공의 공적을 치하하며 공적비 건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야성송씨 문중은 열한 분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된 명문가다. 연암 선생의 공적비가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이 깃들어 있는 백세각과 항일 의적비와 함께 송씨문중을 상징하며 미래세대의 귀감이 돼 선열들의 행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훈익(宋勳翼1885 ~ 1957) 선생의 호는 연암(蓮菴) 자는 성방(聖放)이며 본관은 야성(冶城)이다. 충숙공(忠肅公) 야계(耶溪) 송희규(宋希圭)의 15세손이며 단구공(丹丘公) 송세필(宋世弼)의 8세손이다. 1885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출생, 영남유학의 거두인 공산 송준필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성품은 온화하고 근면했으며 체력이 건장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시 송준필 선생의 발의로 주민들이 백세각(百世閣)에서 회합해 파리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보낼 유림단 독립청원서에 서명하는 일을 도왔으며, 그 해 4월2일 성주장날을 기해 전개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선생은 대한독립만세를 주창하며 성주경찰서로 행진하던 중 일경에게 체포돼 대구형무소에서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군자금을 모금해 독립군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인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애국충정과 공적으로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 독립운동은 김희규(金熙奎)‧송규선(宋圭善)‧송문근(宋文根)‧송수근(宋壽根)‧송우근(宋祐根)‧송인집(宋寅輯)‧송준필(宋浚弼)‧송천흠(宋千欽)‧송회근(宋晦根)‧송훈익(宋勳翼)‧유진성(兪鎭成)‧이기정(李基定)‧장석영(張錫英) 등 유림(儒林)과 기독교도들이 주축이 돼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