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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리포트

성균관유도회 경남본부 임원과 관내 27개 지부회장 및 임원 일동, 영월 장릉 및 창절서원 역사문화 탐방교육 실시

이의호 기자
2024.05.30·3분 읽기·조회 40

 

일행이 영월의 단종능 역사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단종릉 참배를 위하여 일행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단종릉에 참배를 마치고 오는 분과 올라가는분들이 교차하고 있다. 

 

 


 

 

창절서원 입구 배견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창절서원 서재에 보관 전시된 육신사기를 비롯한 영조 숙종의 어제와 어필 육신사, 창절사 개건 상량문, 창절서원 중수기 등이 보관돼 있다. 

 

 


 

 

사육신이신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류성원, 유응부와 김시습, 남효은, 박삼문, 엄홍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창절사 

 

 


 

 

일행이 창절서원 앞에서 수박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성규관유도회 경남도본부(회장 권한대행 김남순)는 지난 5월30일 본부 임원과 경남지역 27개 지부회장, 임원 등 80여 명이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세계유산 사적 제196호 단종릉(장릉)과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창절서원을 방문했다. 

 

장릉은 조선 제5대 문종의 아들로 태어나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단종의 무덤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으나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1457년(세조3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 청령포로 유배됐다. 

 

그러나 여름철 장마에 유배지 청령포가 물에 잠길 우려가 있어 객사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영월유배 4개월만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의 일기로 승하했다.

 

그 후 중종 11년 장릉은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됐고 숙종 24년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또한 영월의 창절서원은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다가 발각돼 죽임을 당한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류성원, 유응부와 김시습, 남효은, 박심문, 엄홍도 등을 모신 사당 창절사(彰節祠)가 있는 서원임에도 지금껏 초하루와 보름에 드리는 삭망례를 행하고 있다고 하니 영월은 가히 충절의 고장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창원에서 새벽에 출발한 일행은 잠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단종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린 후 아쉬운 귀성길에 올랐다.